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어제는 어머님의 삼십삼 회 기제사가 있었습니다. 지금 살아 계시면 백열네 살, 세월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제사에는 미국에서 대학(Pomona College)을 졸업하고 돌아와 있는 손녀 성인도 참석을 하여 더욱 뜻이 있었습니다.
제사를 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어머님의 고생스러웠던 그 생애이옵니다.
그리고 이곳 고향에서 서울로 이사를 결심하시어, 그 많은 식솔들을 데리고 아무도 아는 사람 없던 서울로 이사를 하신 그 결단심이옵니다.
남자로서도 하기 힘든 그 모험, 그 어머님의 모험 때문에 나는 서울에서 공부를 하게 되고, 이어서 일본 동경에서도 공부를 하게 되어, 오늘날의 내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하는 겁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참으로 어머님의 그 큰 은혜에 젖곤 하는 겁니다.
어머님의 그 큰 모험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고향 땅에서 흙을 상대로 사는 농부로 있을 겁니다.
모험과 비약, 이것이 나의 운명을 열어 준 겁니다.
이렇게 인간에게는 환경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환경과 노력, 인간은 자기가 놓여져 있는 환경에서 부지런히 자기 꿈을 개척해 나가야지요.
어머님은 낯선 서울로 그 생활 근거지를 옮겨서 그 어려운 살림을 ‘살은 죽으면 썩는다’라는 생활 철학관으로 우리들을 키워 주셨던 겁니다. 부지런히, 부지런히.
어머님의 이 피어린 노동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우리 형제들이 이렇게 성장을 했겠습니까.
아버님이 돌아가시고(내가 여덟 살 때), 어머님이 혼자 되신 것이 어머님 나이 마흔두 살, 그때부터 여든한 살에 돌아가실 때까지, 어린 우리 형제들을 키워 주신 겁니다. 농토를 팔아 가지고 서울로 올라오신, 그 넉넉지 못한 살림을 해가시면서.
이러한 것을 두루두루 생각하며, 나는 어머님의 넓은 마음, 그 넓은 하늘을 느끼곤 합니다. 고요한 여름밤,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그럼 또. (1995. 6.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