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농촌이 가물어서 야단들이옵니다. 잔디까지 타 들어가는 가뭄이라, 농사 짓는 사람들이 밭 곡식을 걱정하는 이상으로 나는 어머님 묘소 앞의 잔디밭이나, 편운회관 앞뜰의 잔디가 타 들어가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그곳도 가뭄 때문에 물 걱정으로 고생하지 않으십니까.
북한 핵 문제로 남북한이 극도로 긴장하고 있는 이때,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늘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뉴스를 주의 깊게 보고 있습니다. 참으로 불안한 시국이옵니다.
이제는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피난도 할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자동차 홍수로 교통이 마비될 것이니 어디로 가겠습니까. 6 · 25 동란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러고 보니 나의 긴 칠십 평생은 전쟁으로 이어진 세월이라 하겠습니다.
멋모르고 자라던 보통학교, 중학교 시절은 일본이 만주로(중국 동북성), 중국 본토로 침략해 들어가며 만주사변이니, 지나사변(중일 전쟁)이니 하는 것이 잇달았고, 꿈을 가지고 일본 유학을 하러 동경고등사범학교로 진학하고선 소위 대동아 전쟁이니 하는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돌입하고 1945년, 나의 나이 스물네 살 땐 일본이 망해서 우리 나라는 독립을 했다곤 하지만, 끊임없이 계속되던 남 · 북, 좌 · 우의 민족간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항상 불안했고, 드디어 1950년 6 · 25동란이 일어나서 부산으로 피난을 가고 1953~1954년경 다시 서울로 수복을 했지만, 폐허가 된 조국, 그러자 5 · 16 군사 정변으로 이어지고 군사 정권의 유신 체제하의 제한된 자유를 살다가 또다시 12 · 12 사태라는 민족적 비극을 경험해야 했고, 그것들로 이어지는 이 끊임없는 남 · 북 대립 속에 오늘날의 이 불안이 계속 우리들을 위협하고 있는 겁니다.
참으로 용케도 이 불안한 역사의 와중을 뚫고 나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무쪼록 몸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이 잘 이루어지시길 바랍니다. 개구리 우는 밤에. (1993. 6.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