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는 철학입니다
가을이 짙어 갑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보고 싶어집니다.
보고 싶은들, 어찌 그곳에 가겠습니까.
혜화동 로터리엔, 매년 이맘때면 그러하듯이 낙엽이 한 잎, 두 잎,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 낙엽이 떨어져 가는 보도 위를 비둘기들은 더욱 영악하게 모이를 찾아 다니고 있습니다.
밤새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가을비를 듣고 있노라니 가을비야말로 일체 존재의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시가 생각났습니다.
가을비
가을비는 철학이옵니다.
밤 두 시
그 철학을 듣고 있습니다.
지구의 삼장으로 침전하면서.
어제는 서울 정도 600년 기념, ‘범한국인 한민족 문학인 서울 대회’가 북한산 밑 라마다 올림피아 호텔에서 열렸습니다. 이 대회의 고문이기에 개회식에 참석했습니다.
많은 해외 문인들이 참석했습니다. 특히 모스크바에서 리진(Lee Din)씨, 중국에서 김철(북경), 이삼월(하얼빈), 최화국(일본), 김선경(일본), 왕수영(일본), 이계향(뉴욕) 씨 등 이러한 안면 있는 작가, 시인들이 참석했습니다.
인사 겸 축사를 하라고 하길래, “서울 정도 600년 기념, 한국 문인 잔치에 참석하게 된 것을 나의 생애에서 가장 큰 기쁨으로 간직하겠습니다. 대회장 그리고 스태프들 수고가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간단한 축사를 했습니다.
참으로 이 나이(일흔네 살)까지 살아서 서울 정도 600년을 보게 되어 감개가 새롭습니다.
‘나의 문학 작품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참으로 세월은 모든 것을 바꾸어버린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망한 것이지요. 그 변화무쌍함 속에서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1994. 10.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