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존재의 단독자
이 우계(雨季)에 어떻게 지내십니까. 지루하시지요. 보고 싶습니다. 나는 지루한 대로 지루함을 이겨 내기 위하여 항상 원고 용지를 맞대고 있습니다.
항상 먹이를 찾아서 끝없이 광야를 더듬고 있는 굶주린 양떼들을 생각해 본 일이 있으십니까. 그와 같이 나는 하얀 원고지 앞에서 끝없이 영혼의 양식을 찾아서 헤매고 있는 고독한 존재의 단독자입니다.
요즘은 간간이 보내 드리는 것과 같이 ‘편운재 청와헌(片雲齋 聽蛙軒)에서의 개구리의 명상’과 먼 당신에게 보내는 ‘편운재(片雲齋)에서의 편지’를 나의 명상(瞑想)의 생활 기록으로 적어 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말했듯이 기록이라는 것은 든든한 인생의 저축입니다. 기록이 없는 인생은 뜬 먼지와 같은 겁니다. 인생 그 자체가 허무한 것이지만, 저축이 있는 인생은 충만(充滿)한 허무이고, 저축이 없는 인생은 텅 비어 있는 허망한 허무입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당신과 나는 글로, 생각으로, 남기는 기록의 작업을 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위안과 구원(救援)이 있을 겁니다. 독일의 괴테도 이렇게 이야길 하고 있습니다.
“노력하는 자는 노력한 만큼의 구원을 받는다”라고.
자기 만족이겠지요. 자기 만족이 없는 자는 구원이 없습니다. 이 구원, 자기 만족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고, 노력하고, 극기(克己), 자기를 이겨 가면서 자기의 흔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록을 남긴다. 자기 존재의 흔적을 남긴다. 물론 성실한 인생 전체의 탐구자로서의 흔적이지요. 그 성실한 자기 인생 과정을 결실시킨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세상을 살고 떠나는 자의 즐거움입니다. 부지런히 살며, 생각하며, 쓰며, 고통스러운 이 씁쓸한 말들을 이겨 갑니다. 문학답게 많은 글을 썼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하루하루가 소원대로 되시길.
그럼 또. (1993. 7.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