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459호 시를 사는 사람들👁️ 조회수: 5,631 views

시를 사는 사람들

대추나무 잎이 피어서 하늘을 덮기 시작하고 장미가 피기 시작하니 완전히 초여름으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오월도 이제 내일 모레면 끝이 납니다.
나는, 그러니까 5월 27일 토요일, 《시와 시학사》 출신인 시인들이 주최하는 전라도 광주 모임에 초대되어 광주로 호남선 새마을호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오래간만의 호남선 기차 여행, 참으로 상쾌했습니다. 호남선도 많이 개선이 되어 아주 깨끗하고 쾌적했습니다.
광주에는 한 십 년 전에 가보고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만 많이 많이 변해서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습니다.
저녁 ‘시(詩)가 빛나는 밤’ 모임에는 실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직은 우리 한국은 정신 면에서 건전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는 인간 정신의 핵이요, 그 민족의 혼이요, 그 마음이요, 그 양심이요, 그 꿈이요, 그 길이기 때문에 시를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 세상과, 그 민족이 건전하다는 것이며, 그 나라가 청춘으로 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일요일엔 무등산을 구경하고 소쇄원(瀟灑苑)을 산책 했습니다. 정철(鄭澈), 송강(松江) 선생의 유적지 성산별곡(星山別曲)의 시비가 장하게 서 있었습니다.
맑은 계속, 맑은 언덕, 맑은 숲속, 과연 옛날 선비, 문사들이 인생을 풍류삼아 지내던 자연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 고장 난실리 편운재를 생각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호반가든’이라는 음식점에서 술 한잔 했습니다. 광주댐의 상류라 맑은 물이 호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연이 점점 훼손되어 가며, 끝끝내는 파괴되어 가겠지, 하는 생각이 들며 세월을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그 생명이 줄어드는. 그럼 다시. (1995.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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