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비
어제, 1995년 5월 21일 일요일, 한 이십 년 만에 충청남도 대천(大川) 해수욕장에 다녀왔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한국 시인협회 봄 세미나가 대천 시인들의 초대로 그곳 대천에서 있었기 때문이옵니다.
지금 대천은 대천시가 아니라, 그 인근 마을까지 합하여 보령시(保寧市)로 되어 있습니다.
옛날 중앙대학교 해변 휴게소(소장 최진우 교수, 소설가)가 있었던 때와는 완전히 달리, 현대식 해안 도시로 완전히 변모를 하고 있었습니다.
최진우 교수는 내가 중앙대학교 국문과에 출강(1955년, 가을 학기)했을 때의 제1회 졸업생, 그는 나의 권유로 대학원 신문학과(그 당시 신설)로 진학, 졸업 추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창설 시대) 강사로 강단 생활을 시작, 교수로 있다가 애석하게도 수년 전 작고를 했습니다. 그는 소설가로서도 주요섭 소설상까지 수상한 작가였습니다. 주요섭 씨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이름을 남긴 소설가입니다.
대천은 그의 고향이어서 그 초대로 한 번 내려간 일이 있었고, 그의 부친의 송덕비 비문까지 쓴 일이 있어서 더욱 감회가 깊었습니다.
그의 부친은 대천면 면장을 하면서 많은 공적을 대천면을 위해서 남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인간미 있고, 솔직하고, 부지런하고, 나를 많이 도와준 제자였는데,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애석하기 짝이 없습니다.
관광으로 성수사(聖水寺) 사지(寺址)를 둘러보았습니다. 건물은 임진왜란 때 다 소각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절들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때 우리의 중요한 역사는 모두 소실된 것이지요.
그리고 만수사 무량사(萬壽山 無量寺)도 둘러보았습니다. 이곳엔 《금오신화》를 쓴 매월당 김시습의 시비가 서 있었습니다. 후미진 숲속에.
서울로 올라오던 새마을호 기관차가 불이 나서, 밤늦게 서울에 돌아왔습니다. 이상 어제 있던 일 보고드립니다.
그럼, 이만 안녕. (1995. 5.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