冬日
회색 하늘에
나무 상수리 사이로
연시와 같은 해가 솟는다
나는 해보다 일찍이 깨어
맑은 연시와 같은 해가
동쪽 하늘에 솟아 오르는 것을
유리창 아래로 기다리곤 한다
나의 방은
까치집같이 높다
바람이 술술 들어오고
바람이 술술 지나고
나는 겨울 속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가느다란 수은주 하나
37도 부근
나는 내 체온에 의지하여 산다
까치집같이 높은 자리에서
빨간 새털과 같은 이불을
둘둘 말고
해를 내려다 본다
맑은 연시와 같은 해가
크레온 화집처럼
잿빛 하늘 검은 나무 상수리 사이로
나와 내 가슴 아래로
솟아 오른다
까마득한 옛날이다. 이러한 시 「冬日」을 쓴 일이 있다. 그러니까 1955년 출간한 시집 『사랑이 가기 전에』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나는 그때 어떤 실의에 빠져서 혼자서 어머니 집 이층 마루방에서 찬 겨울을 기낸 일이 있었다. 명륜동 그 골목, 통행금지 시간이 다 되어서 가만히 올라가던 그 층계, 아침이 오길 기다리며 추운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목이 타서 대접을 만지면 대접에 있는 물도 얼음이다. 할 수 없이 얼음을 깨뜨려서 입에다 넣는다. 해가 창문에 비치기 전에 이불 속에서 눈을 뜨고 해 뜨길 기다린다.
해는 맨 처음 새빨간 연시로 동쪽 하늘에 회색 천지를 뚫고 솟아 오른다. 그것이 점점 맑아져 연한 연시 색으로 변한다. 그것이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붉은 색에서 주황색으로, 주황색에서 노랑색으로, 노랑색에서 하얀색으로 변하며 하늘 중천으로 접근한다.
그때쯤은 나는 침대에서 벗어나 창경원 모퉁이를 돌아 돈화문 앞쯤을 걷고 있는 거다. 청진동 해장국 집에 다달았을 땐 아침이 환하게 밝아서 또 하루가 시작되는 거다. 나는 이러한 해를 보면서 살았었다.
나그네의 생활! 인생 그 자체가 나그네라 하지만, 나는 집이 있으면서 집이 없는 그러한 나그네 생활을 운명처럼 해 온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 겨울 아침에 떠오르는 빨간 태양, 노란 태양, 하얀 태양을 안다. 얼마나 아름다운 태양인가. 그 아름다움은 나그네 아니고선 좀처럼 모르리라.
겨울은 다시 떠날 준비를 하는 계절이다. 긴 긴 겨울, 새로운 인생을 찾아서 떠날 준비를 하며 이른 봄 다시 떠나는 거다. 그리하여 새로운 봄을, 새로운 여름을, 접어드는 가을을, 스스로를 찾고 키우고, 거둬서 다시 늦가을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거다.
이렇게 인간은 정신적인 여행을 겨울을 기점으로 매해 거듭하면서 살아 가는 거다. 반성과 출발(겨울), 끝없이 이걸 반복하다가 스스로를 하나 만들어 놓고 세상을 떠나는 거, 이걸 인생이라 할까, 나는 이렇게 살아 온다.
– 『내일로 가는 길에』,‘아름다운 인생을 사세’ 부분, 영언문화사, 1987, pp 282 ~ 2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