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304호 주점👁️ 조회수: 6,725 views

주점

일체의 수속이 싫어
그럴 때마다 가슴을 뚫고 드는
우울을 견디지 못해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나는 먼저 아버지가 된 일을
후회해 본다

필요 이상의 예절을 지켜야할
아무런 죄도 나에겐 없는데
살아간다는 것이 지극히 우울해진다

한때 이 거리가
화려한 꽃밭으로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력서를 쓰기 싫은
그날이 있어부터
이 거리의 회화를 나는 잊었다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그러한 수속조차 이미 나에겐 권태로워
우울이 흐린 날처럼 고이면
눈 내리는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산다는 것이 권태로운 일이 아니라
수속을 해야할 내가 있어
그 많은 우울이 흐린 날처럼 고이면 글 한자 꼼짝하기 싫어
눈 내리는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아버지가 된 그 일이
마침내 어쩔 수 없는 내 여생과 같이.

나는 부산 피란지에서 국정교과서의 원고를 하나 쓴 일이 있었다.
편수관에게서 원고료를 수표로 받았다.
한국은행에서 찾는 수표였다.
한국은행에 갔더니 국고금계로 가라는 것이었다.
국고금계로 찾아갔더니 또 어디로 가라는 것이었다.
또 그곳을 찾아갔더니 계원이 외출 중이라는 것이었다.
몇 시간을 기다려도 그것이 그것이었다.
나는 참다못해 포기하고 말았다.
한번은 병적계 문제로 부산 대신동 서부출장소로 간 일이 있었다.
그 수속을 하나 하는데 아침부터 저녁 다섯 시까지 걸려서
기진맥진하여 돌아온 일이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김광주, 박성환, 박운대 이러한 분들과
술을 끔찍이 마신 일이 있다.
이렇게 수속 수속 수속… 수속이 많아서야
어떻게 사느냐 하는 말이었다.
수속을 하러 가서도 그렇게 인간이 천대를 받아서야!
거지발싸개 같은 새파란 젊은 애송이 계원이
그렇게 세도를 부려서야! 이것만이 아니다.
식사를 하러 갔다는 계원이 몇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질 않는 데야
견딜 수 없는 참혹한 일이었다.
그럴 때! 그러한 날 얼마나 생을 저주하고 자학했는지!
또한 길을 가다가도 당당한 증명서가 있는데도 잡아당기는 것이다.
이러한 무질서한 장소에서 하나의 선량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천치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한 날의 우울한 기록이었다.
이 시를 경향신문에 발표하자 주점, 술집에 들어가면
전연 안면 없는 사람들이 그 시 한 두 줄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일체의 수속이 싫다!…… 야! 술, 술을 가져와!’ 이러한 식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같이 술을 마시러 들어간
술친구들의 얼굴을 휙 보며 웃었다.
확실히 시를 써서 이렇게 전연 문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 시를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용이 되는 시,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시,
많은 사람들에게 생활이 되는 시,
이러한 시야말로
우리들에게 가장 귀중한 시가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이 시를 통하여 평생 잊어버릴 수 없는
좋은 선배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나는 사색의 선배라는 뜻에서 철학의 선배라는 말을 쓰는 수가 있다.
항상 눈에 어두운 낭만이 가득 차 있으며
항상 차디찬 고독이 흐르는 눈 기슭.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고귀한 지성의 향수와
깊은 사려(思慮)에 젖어 있는 모습. 그리고 칼날같이 영리한 생활 감정.
나는 이러한 고귀한 고독 속에 냉랭하면서도 뜨겁게 흐르는
인간에의 신뢰와 같은 향수에 젖어 있는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경향신문의 총책임을 맡고 있던 김규성이라는 분이었다.
이시를 발표한 다음날부터 알게 되어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 선배하곤 남포동 ‘뉴 스타’라는(당시 부산에서 가장 좋은 양주집)
스탠드바에 자주 들려서 진을 마셨다.
이러한 일 하나만 기록해 두자.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선거를 계기로
한번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문이 있었던 십이월 달 이야기다.
크리스마스 전날인가 생각난다.
늦게까지 김 선배는 일을 보고 나는 추운 편집실에서
이런 것 저런 것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날은 캄캄해지고 눈이 유달리 많이 내리고 있었다.
김 선배는 모든 일 다 마친 듯이 “나갑시다” 하더니 뉴 스타로 향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비밀 방문 기사를 방금 완료했다는 눈치였다.
(다음날 아침 경향신문은 제일 먼저 이 기사를 취급했다)
그날 밤 우리 둘은 눈 퍼붓는 남포동 스탠드바를
소리 없이 깊이 취해서 돌아다녔다.
차디찬 얼음 불꽃같은 고독한 향수.
지금도 잊어버릴 수 없는 지독한 고독과 애수에 젖은 밤이었다.
하여간 이 시는 많은 좋은 사람들을 알게 한 시였다.

-『고백-밤이 가면 아침이 온다』, 오상, 1999, pp 11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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