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294호 봄마다 편운재에는👁️ 조회수: 6,831 views

봄마다 편운재에는

장석주

안성 난실리 편운재에는 봄마다 영산홍이 피고
뜰의 모과나무는 가을마다 탐스런 열매를 맺지만
편운재 주인은 여기에 없습니다.

낭만과 파이프와 모자를 사랑했던 시인,
그보다는 사람 그 자체,
고독이라는 실존 그 자체를 고요하게 품었던 시인,
올해가 조병화 선생님 가신 지
10년이라는 걸 알고 놀랐습니다.

열 번 봄이 오고
열 번 가을이 가는 동안
우리는 밥 먹고 싸우고 새끼들을 키우고
사업은 번창 했다가 엎어지고,
그 사이 옷에 달린 단추 두어 개가 떨어지고
옷에 구멍이 나기도 했습니다.

세월은 왜 이리 빠른가요?
그 사이 계집애들은 애기 엄마가 되고
그 사이 사내애들은 애기 아빠가 되었습니다.
고독을 잃은 사람들에게 고독을 찾아주던 시인은
아주 멀리 있습니다.

선생님, 잘 계시지요?
선생님 계신 곳에도 모란과 작약이 피고
가을에는 석류도 빨갛게 익어가는지요?
햇볕 좋은 새봄에 안성 난실리 편운재에 오셔서
영산홍꽃 위로 벌과 나비들 잉잉대는 광경도 둘러보시고
나이 어린 것들이 애써서 세상을
얼마나 싱그럽게 만드는지도 한번쯤 봐주세요.
잘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시고
못한 것은 못했다고 야단도 쳐주세요.

그리운 선생님, 새봄에는
얼굴 한번 보여주세요.

장석주 (소설가, 시인)

출생 1954년 1월 8일 (충청남도 논산)
데뷔 1975년 시 ‘심야’
수상 1976년 해양문학상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
경력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강사
2003 MBC 행복한책읽기 자문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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