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237호, 추억👁️ 조회수: 7,253 views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매일같이 계속되는 내 인생에 대한 회의와 좌절로, 부끄러운 일이였지만 자살을 늘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사라지나, 하는 생각으로, 매일을 살아가면서 제일 먼저 버려야 하는 것이 애착이었습니다. 애착이라는 것처럼 무거운 짐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죽으려면, 자살을 하려면 먼저 그 무거운 짐, 애착이라는 것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추억」이라는 작품은 그러한 생각, 그러한 생활, 그러한 회의 속에서 자연히 나온 겁니다.

좌익을 소리 높여가며 떠들고 있는 무리들이나, 우익을 소리 높여가며 떠들고 있는 무리들이나, 나에겐 실로 우습게 보이고, 불쌍하게 보이고, 눈물나게 보이곤 했지만, 그들 틈에서 우리 같은 소리 낮은 양순한 무리들은 실로 무섭기만 하고,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큰 소리로 애국을 부르짖던 그 무리들, 지금 가끔 길에서 보면, 처량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느 시대나, 뿌리 없는 애국자들은 그러한 정상배들인 겁니다. 참으로 그들에게 많이도 시달이면서 견디어야만 했습니다.
아, 슬펐던 그 시절.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자란다, 문학수첩 1995, pp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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