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조기에 애착일랑 금물이였고
그러기에 감상(感傷)의 속성은 벌써 잊었에라
가장 태양을 사랑하고 원망함이 후조였거늘
후조는 유달리
어려서부터
날개와 눈알을 사랑하길 알았에라
높이 날음이 자랑이 아니에라
멀리 날음이 소망이 아니에라
날아야 할 날에 날아야 함이에라
달도, 별도, 온갖 꽃송이도
나를 위함이 아니에라
날이 오면 날아야 할 후조기에
마음이 구족일랑 금물이었고
고독을 날려 버린 기류(氣流)에 살라 함이에라.
이 무렵, 나는 인천에 있는 현재의 제물포고등학교에서 물리 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
교원들도 우수한 선생들이 모이고 학생들도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경성사범학교에서 은사 신기범(나의 경사 시절 영어 선생, 경도대학 영문과 출신) 선생이 학생 테러로 작고하자, 더 이상 이 학교에 있기 싫어서 망설이고 있던 중, 그 길 교장의 권유로 인천으로 내려가게 되었던 겁니다. 반 학기 지나서 그 때 놀고 있던 선우휘(鮮于煇, 경사 동기동창)의 청을 받아들여, 국어 선생으로 데려오기도 하고 한동안 재마있게 지냈습니다.
…
학생들의 좌익투쟁도 심해서, 수업이 잘 안될 때도 많았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너무나 슬퍼서 이러한 「후조」라는 시를 써서, ‘눈알’과 ‘날개’를 든든하게 기르는 학생 생활을 하라고 학생들에게 권유했던 겁니다. 나도 그 외로운 와중에 끼여 앞날을 위험 속에서 응시하면서.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고.
시로 쓰는 자서전 세월은 자란다, 문학수첩 1995, pp 34-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