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224호, 시(詩)는👁️ 조회수: 7,265 views

이 답장이 당신 편지에
도움이 될는지,

시는 내게 사는 힘이었습니다.
그 구원의 손길이었습니다.
그 생존의 위안이었습니다.

시는 존재의 빛
그 빛이 열어 주는 내 길이었습니다.
시는 지(知)의 세계가 아닙니다.
시는 감(感)의 세계이옵니다.

시는 오(悟)의 세계이옵니다.
시는 감(感)과 오(悟)의 세계가 감도는 우주,
그 우주를 감지하는
고독한 희열이옵니다.

무엇보다도 시는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는 왜? 가 아닙니다.
시는 따져 맞추는 세계가 아닙니다.

시는 보이지 않는
큰 자연이옵니다.

언제나 푸른.

좋은 시는, 좋은 시를 많이많이 읽어서 암송할 정도로 시에 젖어 있어야, 자연스럽게 나오는 법이옵니다. 좋은 시를 많이많이 읽으십시오. 그럼 또.

1999. 5. 13

편운재에서의 편지, 문학수첩 2003, pp 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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