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36호 밤의 이야기 47 (2010년 3월 9일)👁️ 조회수: 7,905 views

밤의 이야기47

조병화

지금 너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은
죽어 간 사람들이 다하지 못한
그 시간이다

그리고 지금 너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오늘은
죽어 간 사람들이 다하지 못한
그 내일이다

아! 그리고 너와 나는
너와 내가 다하지 못한 채 이 시간을 두고
이 시간을 떠나야 하리

그리고 너와 나는
너와 내가 다하지 못한 채 이 오늘은 두고
이 오늘은 떠나야 하리

그리고 너와 나는
너와 내가 아직도 보지 못한 채 이 내일을 두고
이 내일을 떠나야 하리

오! 시간을 잡는 자여
내일을 갖는 자여

지금 너와 내가 마시고 있는
이 시간은
죽어 간 사람들이 다하지 못한
그 시간

그리고 지금 너와 내가 잠시 같이하는
이 오늘은
우리 서로 두고 갈
– 그 내일이다.

조병화, 제 9시집『밤의 이야기』 내일이 반드시 나에게 보다 나은 행복한 날들이라고 믿어지지는 않으나, 내일은 그러나 오늘보다는 나을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기대로 그 캄캄한 내일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거지요.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오늘이 그들의 내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소망하고 살다가 다 못 살고 떠난 그 내일, 우리들의 오늘이 그들보다 행복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자연은 더 오염되고 인간은 정신적으로 파괴가 되고, 정신보다는 물질이 행세를 하는 금전 만능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정신 문화는 완전히 물질 문화로 오염되어 인간미가 없는 쌀쌀한 너와 나의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어제의 그 사람들이 이러한 오늘을 알았더라면, 오히려 그들의 오늘 그 어제들을 소중히 지키려고 했겠지요.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오늘을 잘 써서 다시는 오염이 없는 맑은 정신적인 내일을, 그들 내일을 사는 사람들에게 물려주어야 하겠습니다.

조병화,『세월은 자란다』, 문학수첩, p.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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