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신 사랑, 영혼의 집
“친하게 같이 살던 사람들이 다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오래 같이 살면서 집을 지켜 주던 개마저도 어디로인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러한 것이 하나의 인연이라는 것인 모양입니다. 그렇게 밖엔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당신의 낮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이러한 ‘이별의 사건들’이 오히려 당신을 크게 철학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에 있어서 가장 큰 철학은 ‘죽음’이며, 그 ‘이별’의 철학이라고 나는 늘 느끼며 살아왔던 겁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이별이 있으면 또 만남이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옛날부터 일러 내려오는 ‘회자정리(會者定離)’는 실로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만나는 자는 반드시 헤어지는 법’이라는 말이지요.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늘 이야기하는 것처럼 인생 무상인 것입니다. 무상(無常),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나의 편운회관(片雲會館)엔 크게 액자로 걸려 있는 ‘풍운무숙(風雲無宿)’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나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나의 인생 철학을 말하고 있는 거지요. 나는 집이 없는 사람입니다. 있다면 당신의 사랑이 지금 내가 기거하고 있는 내 존재의 집(존재의 숙소)이옵니다. 당신의 사랑이 나의 지금의 집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의 집, 그 사랑이옵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 집은 집이 아니라, 그저 거쳐 가는 가숙(假宿)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도 자연도 모두 변해 가는 겁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자기가 ‘살아 있다’는 그 사실뿐이옵니다. 살아 있다는 그 ‘고독’뿐이옵니다. 그 고독을 풀어 주고 위안을 주고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집이지요.
사람은 고독이라는 것으로 진실을 살아가게 되고, 무상이라는 철학으로 이 인생 깊게 넓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독하다는 것은 진실한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며, 무상이라는 것은 청결한 진리를 살아가는 철학이라는 겁니다. ‘고독한 무상’,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려운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당신을 위안시킨다는 것이.
당신은 나의 ‘고독의 집’입니다. 그럼 또. (1994.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