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신 어머님을 위한 등(燈)
오늘, 1994년 5월 18일, 수요일은, 석가 탄생 2538년이라고 합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꼭 절에 들려 어머님을 위해서 등(燈)하나 달아드리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어서, 이번엔 사람들이 그리 많이 가지 않으리라 생각되는 절을 생각하다가 문득 안성군에 있는 절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차를 청룡사(靑龍寺)로 돌렸습니다.
청룡사는 내가 몇 번 가본 곳이어서 길을 쉽게 찾아갔습니다만, 한편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 어머님도 들렸으리라,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얀 등을 달아드리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달아드리면서 심우도(十牛圖)를 생각했습니다. 심우(尋牛), 견적(見跡), 견우(見牛), 득우(得牛), 목우(牧牛), 기우귀가(騎牛歸家), 망우존인(忘牛存人), 인우구망(人牛俱忘), 반본환원(返本還源), 그리고 부토도래소만월사(扶土塗來笑滿月思)라 했는데, 나는 지금 어디쯤에 와 있는지, 내 자신을 살펴보았습니다.
어머님이 이 세상 살다 가신 대로, 나도 그렇게 살아오는 이 인생의 길, 불교에 대하여 깊이는 공부하지 않아서 무식은 하나 그런대로 경험과 느낌[감지感知]을 가지고 어머님이 가신 곳을 찾아가고 있는 지금, 목우(牧牛), 아니면 기우귀가(騎牛歸家), 아니면 망우존인(忘牛存人)의 언저리쯤을 지금 배회하고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월순천(日月順天)’이니, ‘무아(無我)’이니, 혹은 ‘생자 무상(生者無常)’이니,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내가 내 자신을 닦아오긴 하지만, 아직 이 세속의 때가 다 닦이지 않아서 번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대한 애착도 번민이요, 당신에 대한 사랑도 번민이요. 노후에 다가올 병마에 대한 근심도 번민 중의 번민이옵니다. 언제쯤 가야 인우구망(人牛俱忘)쯤 될는지.
절에서 돌아와 어머님 묘소 앞의 잔디밭을 다 깎아 드리고, 편운회관(片雲會館) 주위의 잔디도 다 깎았습니다.
날씨가 너무나 좋아서 당신이 생각났습니다. 장미가 피기 시작하고, 찔레꽃도 만발하고, 뻐꾸기가 멀리 가까이 울고 있었습니다.
그럼 또. (1994.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