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신 아, 그 많은 어제들
어제 그림 전시회는 끝났습니다. 판매는 부진했으나 나로서는 기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해주었고, 좋아들 했기 때문이옵니다.
또 하나의 일을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더구나 늙어 가는 처지에 한 위안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일을 하는 것으로 이 권태로운 인생을 이겨나가고 있습니다.
실로 직업을 갖지 않는 사람들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권태롭습니다.
요즘은 세상이 불경기 불경기 하는 목소리가 실감이 듭니다. 그림이 안 팔리는 것을 보아도 알지만, 통 회사 사보 같은 곳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회사 사보 같은 곳에 원고를 써서 생활비를 만드는 나로서는 큰 공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새롭게 대통령(김영삼)이 취임한 이래, 온 세상이 경제적으로 긴장들을 하고 있는 사회 공기입니다.
한때는 정치적으로 꽁꽁 얼어붙더니, 이번엔 경제적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는 감이 듭니다.
이렇게 원고 청탁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지, 하는 생각에 오늘도 시간을 죽여 가기 위해서 묶은 신문ㆍ편지ㆍ서류들을 추려가면서 옛날을 정리했습니다.
참으로 많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쏟아져 나오는 옛 신문들을 버리며, 그 버리는 신문이나 잡지ㆍ편지들 속에 내가 묻혀서 사라져 가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면서 대충대충 추려갔습니다.
이렇게 대충 남는 것이 이젠 나의 기록이 되겠지요. 아주 중요한 것들이 버려지는 것들 속에 끼여 있을지도 모르지요.
아, 그 많은 어제들. (1993.3.1. -10°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