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신 생애의 종점에서
3월도 벌써 중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요 며칠 편운회관 주위에 잔디를 깔았습니다. 그리고 마당 한가운데 은행나무 한 그루와 안성읍에 있는 김유신(金有新) 시인이 기증한 감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김유신 시인은 자동차 사고로 다리를 하나 잃고, 목발을 딛고 왔습니다.
어지간한 짐들을 회관 안에 풀고, 배치를 해놓고 보니 그런대로 일생을 부지런히 살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더 훌륭히 산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의 능력, 나의 정력, 나의 건강, 나의 재능, 나의 환경, 나의 운수로 이만하면, 하는 생각이 들어 이제 인생을 다 살았구나 하는 생애의 종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죽는 것은 그리 섭섭하지는 않으나, 웬일인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그머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나의 무덤을 지금 내가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산천들이 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산수유는 벌써 노릇 노릇 얼굴들을 내밀고들 있었습니다. 나무들 가지가지에선 여드름들이 돋아나고.
한없이 고요한 고향 산천이옵니다. (1993.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