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그네
눈바람 치는 수인선(水仁線)
낯설은
간이역(簡易驛)
군자리(君子里)
염전(鹽田) 벌판
흐린 풍경
갈매기
끼
끼
하늘에
쓸리고
눈 털고 들어선
주막(酒幕)
깨진 유리창
바람이 차다
얼어붙은 김치쪽
굴 한 탕기
걸터앉아, 잠시
탁주로 마음 녹이는
길손
저린 가슴아
동행의 손, 아직 차구나
“노형(老兄) 말씀 뭅시다
서울 가는 버스, 혹 있는지요”
“하루 한 번 내려왔다 올라갑디다”
노형은 염전 조합원
대포 한잔 요기하러 들어선 길
콧수염이 얼었다
서울은
저문 북쪽
흐린 이 해안(海岸)
바람 탄 벌
하늘에
갈매기
끼
끼
「군자리(君子里)」라는 작품이다. (시집 가숙(假宿)의 램프 속에서) 그러니까 벌써 10여 년 전 일이고, 그때의 작품이다. 수원에서 올라탄 인천행 좁은 기차, 군자리에서 내린 풍경이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추위가 몸에 저리도록 차가운 저녁 무렵이었다. 음산한, 실로 음산한 겨울 바닷가 풍경, 소금밭의 풍경, 어느 소설에 나오는 스코틀랜드, 아니면 아일랜드 해안 풍경 같은 인상이었다.
외딴곳에 주막이 있었다. 서울을 하루 한 번 왕복하는 버스 종점, 그 정거장 부근이었다. 추위를 녹이기 위하여 주막에 들어서서 낡은 의자에 걸터앉아 막걸리를 마신다. 고객이 없는 바닷가 주막, 갈매기 끼, 끼, 황막한 세찬 바람에 뜨고, 깨진 유리창 구멍으로 몰려 들어오는 강한 바람 소리, 그 차가움, 그 속에서 나는 슈베르트(1797~1828)의 (빈테르 라이제(겨울 나그네)」의 기분에 젖어 있었다.
“삶이란 건 이래서 살맛이 나는 거. 쓸쓸해서 아름다운 거” 하면서 한 잔, 또 한 잔, 눈을 털고 들어서는 염전 조합원으로 보이는 노인에게 말을 붙이면서. 나그네는 이렇게 쓸쓸한 맛으로 사는 거다. 인생의 그 바닥에 깔려 있는 저리도록 쓰린 쓸쓸함으로 사는 거다. 인생이 그러하듯이 쓸쓸하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조물주의 선물이냐.
사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거진 나그네였다. 그러니까 나그네가 내 집이었다. 학교생활이 그랬고, 사회생활이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부담 있는 나그네가 아니었고, 목적 있는 나그네가 아니었고 누가 불러서의 나그네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를 찾아서의 나 혼자의 나그네’ 그것이 아니었던가 생각이 든다. 그것도 봄 나그네, 여름 나그네, 가을 나그네, 보다 겨울 나그네를.
올해도 다 저물어 이제 대지가 얼어붙는 겨울이 온다. 더 깊이 그 쓸쓸한 삶의 맛을 새로 발견하기 위해서 올 겨울에도 집을 나가 봐야지, 생각하면서 이 원고를 쓴다.
언젠가 다가올 내 마지막 인생의 겨울을 견디어내기 위하여 그 언 겨울을 살아야 한다. 작별을 연습하면서 혼자를 연습하면서. 그 고요한 죽음을 연습하면서.
지금 군자리는 달라졌을 거다. 작은 도회지로 되어 있으리라. 그러나 눈보라치던 그 군자리의 겨울 나그네를 나는 그대로 생생히 추억한다. 아름다움을 가지고. 내 인생 가장 시(詩) 같은 순간으로. 그 사람의 맑은 눈과 더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