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
요란스럽게 전화 벨이 운다. 수화길 든다.
“교수님이십니까?”
“네.”
“저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몇 회 졸업의 누군데요?“
“글쎄.”
“부탁이 하나 있어 전화 올렸는데요.”
“난 주례는 안 서는 사람이야.”
“아닙니다. 곧 학장실로 찾아뵙겠습니다.”
“정말 주례는 안 서는 사람이야. 그냥 전화로 얘기하지.”
“아닙니다. 곧 가겠습니다.”
“여봐요, 현대문명을 이용하라구. 먼 이곳까지 올 거 없다니까. 전화로 얘기해요.”
“아닙니다. 찾아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로 바쁘니까 용건만 전화로 얘기하라니까. 자네 내 성질 잘 알잖나, 시간 허비 말고 전화로 얘기해요. 자, 어서.”
“아닙니다. 곧 그리로 가겠습니다.
“아까 전화 올린 아무개입니다. 진작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 사람아,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서로 바쁜 세상인데. 그래 요즘 뭘 하고 있나?”
“실은 지금 이런 걸 하고 있는데 장갈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장님께 주례를 하나 부탁드릴려고 전화드린 겁니다.”
“글쎄 아까 전화로 미리 말한 것처럼 주례는 서지 않는다니까.”
“그러지 마시고, 제 청 한 번만 들어주십시오. 모처럼 만에 장가 한번 가는데 교수님 꼭 부탁합니다.”
“글쎄, 내가 설 거 같으면 왜 안 된다고 하겠는가, 그렇게 좋은 일에 있어서. 그러나 내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지금까지 주례를 한 번도 선 일이 없단 말이야. 나도 가슴 아프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교수님을 꼭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글쎄, 그건 고맙지만 나는 나대로 생각하고 있는 게 있기 때문에 부끄러워서 못 선단, 말이야.”
“그게 접니까?”
“간단히 말해서 내 인생관이야. 주례를 선다는 게 내게 맞지 않는단 말이야.”
“다른 사람 다 서는데 유독 교수님만 그럴 거까지 없잖습니까?”
“암, 그럴 거까진 없지. 그러나 나의 덕망에 있어서 학식에 있어서 사회 체면에 있어서 나의 언행에 있어서 나의 운명에 있어서, 그런 자리에 설 수가 없단 말이야. 더구나 나는 시를 쓰고 있는 사람이야. 시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말이야.”
“그러시니까 더욱 전 매력을 가지고 찾아온 거 아닙니까?”
“시인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세속적인 인간사에 너무 가까와지면 시는 그 혼을 잃고 만단 말이야. 보다 소박하게 보다 근원적으로 보다 본질을 살고 싶은 게 시란 말야. 그리고 위선적 인간사가 싫단 말이야. 주례를 서는 사람들을 보게. 얼마나 거룩한가.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단 말이야. 용서하게.”
“학장님, 너무하십니다.”
“글쎄 자넨 서운하겠지만, 나로 하여금 나를 좀 지키게 하여 주게.”
빌다시피 해서 보낸 뒤엔 마음이 개운치 않아 한동안 나는 나를 앓는다. 너무 이기주의가 아닌가, 너무 폐쇄주의가 아닌가, 너무 심하지 하면서 며칠을 무거운 생각으로 보낸다. 그러다가 또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리면, 이거 또 그게 아닌가 하고 수화길 들면,
“교수님이세요?”
“네.”
“이건 찾아뵙고 말씀드려야 도리겠지만 청이 있어 전화드리는 겁니다.”
“주례만 빼놓고 모든 상의에 응하겠네,”
“바로 그건데요. 주례 한번 서 주십시오.”
“그건 못하겠어.”
“왜요, 제자가 모처럼 만에 결혼 한번 하는데 거절하시겠어요?”
“아냐, 축하해. 그러나 주례는 한 번도 서본 일이 없고 앞으로도 서질 않을 결심이야.”
“그러니까 부탁드리는 거 아네요.”
“그러지 말고 나로 하여금 나를 좀 지키게 해 주게. 그럼 전화 끊어.”
꺼림칙하게 며칠이 지난 후 뜻밖에도 전화를 걸던 그 졸업생이 찾아와, “학장님, 일전엔 전화로 죄송했습니다. 아주 청첩장을 찍어왔습니다. 이겁니다. 마음에 드실는지요?”
“여보게, 이렇게 내 이름을 넣어 찍어 가지고 오면 어떻게 하나? 그렇게까지 내가 주례를 서지 않는다고 말을 했는데 정말 안 선단 말이야. 아니 못 선단 말이야. 나는 불행한 놈이야. 박복한 놈이야. 가정적으로 원만치 못하단 말이야. 그걸 다 얘기해야 아나. 불행하고 고독한 놈이 어떻게 자네 앞에 떡 서서 주례라고 이래저래 해서 잘 살게 하겠는가. 난 그런 위선자가 되기 싫단 말이야. 불유쾌하겠지만 이거 도로 가지고 가게. 그리고 인쇄비는 대신 내가 낼께. 정 서운하거든 청첩인으로 넣어 주게.”
“그렇게 고집이 세신 줄 몰랐습니다.”
“이 사람아, 고집이 아니고 그게 내 철학이란 말이야.”
“그럼 할 수 없죠.”
“선생님, 절 알아보시겠어요? 전 서울고교 시절 선생님께 수학을 배웠던 아무개입니다.”
“그럼 상당히 오래된 학생이군.”
“그렇습니다. 뱃놈입니다. 배를 타고 세계를 돌다 보니 장가도 못 갔습니다. 그래, 장가나 들까 하고 이번 고국에 좀 물렀습니다. 이 사람입니다. 이런 뱃놈도 좋다고 해서 백년해로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 축하합니다.”
“그런데, 주례 좀 서 주십시오.”
“우선 앉게. 그래 어딜 그리 다녔나?”
“세계 안 간 곳 없죠. 구석구석 돈 냄새 나는 곳이라면 어디나 갔죠. 원양선을 타고 있습니다.”
“그래, 부러운데. 자네 몸에선 바다 냄새가 나는군. 영국의 시인 존 맨스필드의 시처럼. 그런데 내겐 병이 하나 있어. 주례를 설 수 없는 병이 있어.”
“그게 뭔데요?”
“행복한 일엔 행복한 사람이 축하를 하고 주례를 서야 해. 그런데 나에겐 그런 행복이 없단 말이야. 대단히 내 운명은 기구해서. 그러니 내 좋은 분을 나 대신 소개할 테니 우선 차 한 잔 마시게.”
가슴이 갈라지는 느낌으로 이런 말을 신부될 사람 앞에서 말해버렸다. 이렇게까지 해서 나를 지킬 필요가 있을까 하고. 그러나 지켜야 한다.
그 언젠가 찾아왔던 K군이 “선생님 아니면 주례를 서 줄 사람이 없습니다.” 하고 돌아서던 그 말을 지키기 위하여서도 평생 주례를 서서는 안 된다. K군은 옛날 내가 중학시절 가정교사 하던 부호의 아들, 그러나 그땐 육군 대위, 스스로 스스로를 세워가던 자립 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