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72호 (『왜 사는가』)👁️ 조회수: 1,346 views

보다 큰 사랑을

작은 유리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포플라나무
가지 중턱쯤 걸려 있는
까치집

까치는 날아가고
빈 12월
겨울이 지나간다

모두들 어디로 갔나

쫓으며
쫓기며
가는 세월
가고 있는 세월

사람도
나뭇잎도
바람도
모두들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떠난 것들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생각 저편에서
아물아물, 날로
손을 흔들며 죽어들 가고 있다.

이 시는 시집 󰡔딸의 파이프󰡕에 들어 있는 「12월」이라는 작품. 1976년 중앙일보에 송년시로 실렸다.
12월, 그 송년은 해마다 이러한 생각이 들곤 한다. 모든 것이 고요하다. 소란한 것 같지만 모든 것이 깊은 생각 속에서 고요하게 진행되고 있다. 송년 풍경은 모든 것이 바쁘고 떠들썩하지만, 인간의 마음속엔 실로 고요한 반성의 물결이 흐른다. 한 해가 가는 감회,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 소중한 세월이 사라져 가고 있는 깊은 아쉬움이 감돈다.
반성! 한 해를 어떻게 지냈나? 소망한 것들을 소망한 대로 다 이루었는가? 열심히 살았는가? 낭비가 없었는가? 태만이 없었는가? 게을리 보내지나 않았는가? 남에게 해로운 거나 하지 않았는가? 남에게 이로운 것을 조금이나마 했는가? 보다 자기대로 자기를 살았는가? 연초에 꿈을 꾸었던 것들이 얼마나 이루어졌는가?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것들을 가끔은 반성해 보면서 살아가는 거다. 그리고 보다 성실하게, 보다 보람있게, 보다 아름답게, 보다 정답게, 보다 친절하게, 보다 이웃과 평화스럽게 살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을 총결산해 보는 것도 연말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어딜 가나 온 겨레들이 부지런히 살고자 하고 있다. 부지런히 살고들 있다. 보다 잘 살기 위해서 머리를 쓰고, 공부를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해 가면서 알뜰하게 알뜰하게 생활 설계를 꾸며 가고 있다. 농촌엘 가나, 어촌엘 가나, 어느 도시엘 가나, 두메 산골엘 가나 살고자 하는 열기가 서려 있다. 놀고 있는 곳이 없다. 놀고 있는 사람이 없다. 놀고 있는 도구들이 없다. 이렇게 지금 우리나라는 숨 가쁘게 살고 있다.
이러한 속에서 하루가 어떻게 빨리 지나가는지도 모른다.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하루가 지나가고, 한 달이 지나가고 봄, 여름, 가을, 일 년이 지나가고 있다. 어물어물할 수가 없는 고도 산업화가 되어 가고 있는 우리나라. 실로 쫓으며 쫓기며 일하는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 올해도 어느덧 12월, 한 해의 마지막이 되었다. 많은 것을 해 놓은 것 같으면서 많은 것을 놓쳐버린 것 같은 생각으로 지금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잊어야지
잊어야지
하면서, 잊어지지 않은 채
봄, 여름, 가을
올해도 어느덧 세월 갈리는
바람의 언덕
밀리며
밀리며
이 인간의 세계
쓸쓸한 건 그 저문 풍경이다

가진 사람이나
갖지 않은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나

동행하면서
동행하면서
이 혼자
이 혼자를 견디며
세월을 넘는다

잊어야지
잊어야지, 이 비밀
하면서.
「세월」

우리는 어느 의미에서 온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은 근심과 기원과 소망과 그 긴장을 살고 있다. 항상 가시지 않는 국가 안보에 관한 근심, 그 긴장 속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 자기 소망을 기원하는 마음, 자기 꿈을 이루고자 하는 끊임없는 기원과 노력 속에서 매일매일을 어느 기도 속에서 살고 있는 거다. 6.25의 무서운 동란을 겪은 그 공포가 항상 서려 한구석에 남아 마음의 평온을 어지럽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긴장! 물론 우리 인간들은 어느 정도의 자기 나름대로의 긴장 속에서 누구나 살고 있는 거다. 그러나 우리 겨레들은 어느 정도의 자기 나름대로의 긴장이 아니라, 온 겨레의 공통적인 그 긴장 속에서 살고 있는 거다. 이 온 겨레의 공통적인 긴장을 슬기롭게 같이 살아 넘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더 큰 사랑을 배워 가야만 하겠다. 올해도 그렇게 살았지만.

Translate »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