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71호 (『왜 사는가』)👁️ 조회수: 1,362 views

자연스러운 것, 세련된 것, 수양된 것

멋! 그것은 하나의 자연이다. 승화된 자연이다. 만들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꾸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장식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조작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렇게까지 세련된 것이며, 수양된 것이며 승화된 것이다.
예술가는 예술가로서의 멋이 있는 것이다. 학자는 학자로서의 멋이 있는 것이다. 정치가는 정치가로서의 멋이 있는 것이다. 사업가는 사업가로서의 멋이 있는 것이다. 기술자는 기술자로서의 멋이 있는 것이다. 스포츠맨은 스포츠맨으로서의 멋이 있는 것이다. 교수는 교수로서의 멋이 있는 것이다. 군인은 군인으로서의 멋이 있는 것이다.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 학생은 학생으로서, 근로자는 근로자로서.
이렇게 제각기 있는 자리에서, 하고 있는 일에서 그 인품이 형성되고 그 형성된 인품에서 자연히 멋이 풍겨 나오는 법이다. 그러니까 거꾸로 말해서 그 자리, 그 일에서 멋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항상 그 자리, 그 일에 충실하고 그 자리, 그 일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뛰어난 능력, 실력을 쌓아가야, 오랜 세월을 거쳐서 그 자리, 그 일에서 멋을 살 줄 아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 자리, 그 일에 있어서 제일인자가 되는 것, 제일인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그 분위기에 젖어 사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을 보라, 슈바이처를 보라, 헤밍웨이를 보라, 피카소를 보라, 아이젠하워를 보라, 맥아더를 보라, 로버트 프루스트를 보라, 우리 김환기(金煥基) 화백을 보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인간들이 그 온 생애를 마지막 그 인간의 멋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것이 그대로 하나의 멋이 아니었던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까운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보물도 아니다. 가옥도 아니다. 의상도 아니다. 토지, 재산도 아니다. 실로 위대한 생애를 살아온 한 인간이 죽어서 사라져가는 것이다. 그러한 보람찬 일생을 살아온 그 멋을 지닌 한 인간이 죽어서 썩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존경하던 사람, 그 멋있는 인간이 죽어서 사라지는 것처럼 아까운 것이 없다. 이렇게 멋은 스스로 그 인간에게서 빚어나오는 법이다.
멋은 용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멋은 복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멋은 화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멋은 돈이나 권력이나 제스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또한 멋은 웅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영화 배우는 미인이어야 했다. 주인공은 하나같이 미인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그 인간 자신이 지니고 있는 성격, 그 멋이 값을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옛날 멋장이라 하면, 얼굴 잘생기고, 옷을 잘 입고, 화장을 잘하고, 돈을 잘 쓰고, 잘 노는 사람을 말했다. 유행을 잘 따르는 옷을, 화장을, 행동을, 말을 하는 사람, 과연 그것이 멋장이일까?
요즘 여성 잡지를 열어 보면 참으로 요란하다. 그 각인 각색의 모델•의상•화장•몸맵시•스타일,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것을 멋으로 착각하고 있는 인간들, 인텔리들, 과연 그 인간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인가? 피곤한 인생들이다. 그것을 멋으로 생각하고 있는 우리 사회, 한 번쯤, 열 번쯤 가라앉아서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멋은 이러한 겉치레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 내면에서 스스로 솟아오르고 빚어 나오는 것이다.
스포츠처럼 사는 거, 매사 일상생활을 스포츠처럼 사는 거, 나의 경우 이러한 것에서 나의 생활의 스타일을 찾아내고 있다. 그것이 멋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나에게 맞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이 그렇고, 일을 해 나가는 것이 그렇다. 명확하고, 선명하고, 간결하고, 직선적이고, 솔직하고, 꾸밈이 없고, 계략이 없고, 음모가 없고, 계산이 없고, 인간 그대로의 순결한 소박함이 이러한 스포츠적인 생활엔 있는 것이다. 성실한 근면과.
인간이 이러할 때 그 누구에게나 우선 호감이 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고, 자연스럽게 그게 생활이나 말이나 행동에서 나타날 때 그것이 자연스러운 멋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이러한 것들이 오랜 세월 동안 그 몸에, 행동에, 생활에 축적이 되면 그곳에 그러한 인품이 하나의 멋있는 스타일로 형성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 인간이 어디서 어떠한 옷을 입고, 어떠한 말을 하고,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다운 멋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멋을 만드는 데는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것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수양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으로서의 높은 교양이요, 자기 전공으로서의 깊은 교양이요, 현대 사회에 있어서의 지식인다운 폭넓은 교양이요, 한 인간으로서의 포용성 있는 윤택한 교양이다.
이렇게 한 인간의 멋은 우선 그 인간의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광범위한 교양에서 오며, 개성적 인간으로서의 깊은 전문적인 교양 내지는 그 지식에서 오는 것이며, 이 두 가지를 합친 훈훈한 인간미, 그 겸손한 여유에서 오는 것이다.
허술하게 옷을 입어도 멋이 있고, 곰탕•설렁탕 같은 것을 먹어도 멋이 있고, 소주를 먹어도 멋이 있고, 실수를 해도 멋이 있고, 아무렇게나 농담이나 행동을 해도 멋이 있고, 그냥 혼자 걸어가도, 누구하고 섞여 가도 멋이 있는 그러한 인간의 멋, 그것은 오랜 세월의 한 인간의 지혜에서 오는 것이다. 꾸준한 노력과 연구와 경험과 대인간적인 무수한 접촉 속에서 닦여진 인품, 인격, 인간다운 인간, 이런 곳에서 참다운 인간의 멋을 나는 발견하곤 하는 것이다. 손쉽게 머리에 떠오르는 현 우리 사회의 선배들, 언론계의 H씨, 문화예술진흥원의 S씨, 인류 고고학계의 K씨, 건축계의 K씨, 미술계의 Y씨 등등.
이러한 분들이 우리 사회에 생존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멋이다. 이러한 분들이 하나하나 사라져 간다는 것은 보석보다도 수백 배 아까운 일이 아닌가,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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