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67호 (『왜 사는가』)👁️ 조회수: 1,575 views

미국 여성들의 생활

미국엔 두 차례 들른 일이 있다. 1966년 7월에 뉴욕에서 열렸던 제34차 국제 팬(P.E.N)클럽 대회에 참석해서 처음으로 미대륙을 돌던 여행, 그리고 1969년 9월에 프랑스 망통에서 열렸던 제36차 팬클럽 대회에 참석했다 돌아오는 길에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돌아 대서양을 건너 뉴욕으로 해서 돌아오던 미국 여행, 이렇게 두 차례다.
국제 펜클럽이란 국제적 문인들의 총연합회를 말하는 거다. P는 시인•희곡작가를, E는 수필가•평론가•문학담당지의 편집자를, N은 소설가를 말하는 거로서, 국제적으로 시인•희곡작가•수필가•평론가•문학편집자•소설가들이 모여 하나의 단체를 만들어 1921년 런던서 발족, 해마다 나라와 장소를 달리하여 그 총회를 열어 문인들의 친목과 그 권익옹호를 도모하는 비정치적인 연합체다. 그리고 세계 문화기구인 유네스코(UNESCO)에서 많은 후원을 하고 있다. 재작년, 그러니까 1970년 7월에, 동양에선 두 번째로 우리나라 서울에서 그 제37차 대회가 열렸던 건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바다. 문인들이 해외에 나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러한 세계문인대회에 참석하는 일이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뭏든 나는 이런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는 기회를 얻어 어지간히 세계 여행을 했다.
미국! 한마디로 말해서, 실로 어마어마한 나라다. 그 면적에 있어서, 그 자연에 있어서, 그 인구에 있어서, 그 인종에 있어서, 그 돈에 있어서, 그 문명에 있어서, 그 물질에 있어서, 그 규모에 있어서, 그 설비•시설에 있어서, 그 발전상에 있어서, 개인 개인의 생활에 있어서, 그 여유에 있어서 실로 지상 황금의 나라, 거국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이렇게도 큰 나라, 힘의 나라! 바로 그거다. 물론 여러 가지 문제도 많이 안고 있지만.
아이들에서부터 어른•노인들까지, 하나같이 ‘자유’를 누리고 있는 철저한 인간 개방의 나라. 그러나 도덕이라는 상호 질서 속에서 서로를 아끼며 서로를 즐기며 서로를 지키며,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 잘 살아가는 이 나라, 이렇게 생존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라가 다시 있을까. 사실 든든한 신체와, 건실한 정신과, 성실한 근면성만 있다면 얼마든지 벌어먹고 노동의 댓가와 인간의 댓가로 치부하며 생존 영원을 즐길 수 있는 나라, 그게 미국이다. 인간이 인간의 대우를 받고 개성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다가 이 세상 하직할 수 있는 나라, 그 생명의 푸른 천지다. 구질구질한 것 없고 매사 사무적이면서 질서정연하게 차가울 정도로 잘 움직이고 있는 것이 이 미국 사회다.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 모두 자기를 알고 생활하고 있는 나라, 자기의 개성을 개성대로 살리며 그것으로 인하여 더욱 멋있고 부드럽게 자기를 살아간다. 따라서 복장이나, 화장이나, 장식이나 모두 자기에게 맞고 어울리게 하고 다닌다. 자기의 인생에, 철학에, 미학에, 풍류에, 취미에 맞고 어울리게 하고 다닌다. 덮어놓고 유행에 따르지 않고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 식의 개성이 없는 용모나 생활이 아니라, 나니까 이렇게 한다, 나는 이거다 식으로 ‘나’를 살리고 ‘나’를 산다. 때문에 그들은 아름답고 시원시원하고 새롭고 싱싱하다. 노인은 노인을 살 줄 알고 젊은이는 젊은이를 살 줄 알고, 아이들은 아이들을 살 줄 안다.
청소녀는 청소녀대로, 중년여성은 중년여성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그 화장술이 다르다. 연한 데부터 짙은 데까지 세련된 그 화장술은 몸에서 풍겨 나온다. 공원에 앉아 있는 노인들, 식당에 앉아 있는 여성들, 데파트먼트에서 물건을 사고 팔고 하는 여성들, 학교에 등교하는 여학생들, 그리고 캠퍼스 속을 왕래하는 여학생들 모두 생생한 신선미를 띠고 생활하고 있다.
화장은 노인일수록 짙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시작을 하여 샌프란시스코•시카고•뉴욕•워싱턴•보스턴•버팔로•클리블랜드•센트루이스•달라스•엘파소•샌디에이고•롱비치•로스앤젤레스 등 약 두 달 동안을 지도 하나로 버스를 타고 그 넓고 넓은 나라를 세밀히 구경하고 돌았지만, 일반적으로 노인일수록 화장이 짙다. 그러나 그 짙은 화장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곱고 투명한지, 아름다운 그림의 색깔 같다. 화장품의 질에도 달렸겠지만 그 화장술, 그 교양에 달려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든다.
좋은 화장품, 나쁜 화장품, 그 품질에 따라서 그 화장의 효과가 다른 건 사실이겠지만, 덮어놓고 문지르고 바른다 해서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다. 자기의 얼굴, 자기의 살결, 자기의 교육, 자기의 신분, 자기의 직업, 자기의 취미, 자기의 연령, 그리고 그 환경을 잘 살펴, 그것에 맞게 어울리도록 색과 농도, 그 품위를 조정, 조화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들처럼 그저 일률적으로 바르고 문지르는 화장술——더께더께 입히는 화장술, 연령 불구하고 교육•철학•취미 불구하고 메이크업을 하는 화장술은 저 아프리카 미개한 여성들 보다는 좀 낫다 하더라도 이건 좀 생각할 문제다. 화장품의 질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그 화장을 하는 사람의 교양이 문제가 되는 거다. 동양•미국•서양이 같은 화장품을 쓰되 이렇게 판이하게 그 효과가 다른 건 역시 그 개인과 그 사회, 전통적 분위기다. 되도록이면 맑게, 되도록이면 자연스럽게, 되도록이면 우아하게, 되도록이면 은근하게, 되도록이면 자기 살결에 맞게 잘 해야, 그게 화장의 효과가 아닌가. 오히려 화장을 해서 해롭게 되면 이게 무슨 꼴인가. 화장을 해서 본인도 기분이 좋아야 할 그 화장이 오히려 자기도 부자연스럽고, 상대방도 기분 좋지 않다면 그건 정말로 넌센스가 아닌가.
우리나라에선 이런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여성들은 자연미를 살리는 화장을 한다. 너무나 눈에 띄는 인공적인 화장을 피한다. 직업부인 아니면 눈을 그리고 눈썹을 달고, 색칠을 하는 일 따위를 피한다. 자기 피부를 잘 알고, 그걸 바탕으로 해서 그걸 살리며, 보다 효과 있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화장을 한다. 냄새도 그렇다. 그저 향수이니까 몸에, 옷에 뿌린다 하는 식은 없다. 어디까지나 자기 품위를 존중하는 냄새를 택한다. 이런 점은 구라파 여성들보다는 좀 낫지만…… 역시 미국 여성들은 어느 정도 세련된 화장술을 체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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