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실 때마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생각나는 두 사람이 있다. 하나는 남자이고, 하나는 여자이다.
남자는 화가 김환기(金煥基)씨이다. 수화(樹話) 김환기씨는 부산서 수복한 후에도 성북동 비탈진 밭에 있었던 전형적인 한옥 기와집에 살았었다. 사랑채를 화실로 크게 쓰고 있었으며 안채도 여유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는, 모양 있는 좋은 집이었다.
집 밖에 있는 넓은 밭에는 큰 나무들이 군데군데 서 있었다. 그리고 새집들을 만들어 세워 놓고 있었다. 지나가는 새들이 쉬었다 가라는 수화의 마음이었다. 물론 수화 자신이 만든 새집들이다. 새들이 그 집을 들락거리는 것을 보면 대단히 즐거운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수화는 이렇게 자연과 더불어 사는 도시인이었다. 그는 전남 바다에 떠 있는 섬에서 태어났지만 전형적인 대도시인이었다. 멋이 있었다. 여유가 있었다. 그는 화가 이전에 시인이었다. 화가라 하지만 그의 작품엔 항상(어느 작품이 거나) 시가 가득히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한 화가하고 친히 지냈었던 것은 일생의 가장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성북동 수화의 아기자기한 화실을 자주 들렀었다. 그때마다 끓여 주는 배전두 커피의 맛, 그것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부인은 유명한 여류 수필가인 김향안(金鄕岸)씨이다. 수화는 직접 배전두를 빻는 기구를 가지고 있었다. 커피를 끓일 때마다 그 향기를 더하기 위해서 이렇게 빻는다는 것이다.
그 순수한 감각의 접촉, 그것을 수화는 사랑하고, 그 향기로운 순결한 향기를 벗에게 대접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원두를 빻아서 끓인 커피를 그 이전엔 마셔 본 일이 없었다. 고요한 화실에서 거대한 화가 수화와 수필가인 그의 부인 셋이서 커피에 관한 이야길 하면서 마시던 커피의 향기와 맛, 그 분위기를 커피를 마실 때마다 나는 회상하는 것이다.
수화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나서 뉴욕 공동묘지에 묻혀 있고 부인은 홀로 뉴욕에서 늙어간다. 남에게 이렇게 잊혀지지 않는 회상을 남겨 준다는 것도 인생에 뜻이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거의 30년간을 파이프 담배를 즐겨 오지만 이 커피의 향기와 담배 향기는 이웃사촌처럼 나에겐 인생의 벗이 된다.
그 맛과 향기, 그리고 그 분위기가 비슷비슷하게 나의 인생을 동반해 준다. 즐거울 때나 쓸쓸할 때나, 특히 외로울 때는 더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