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64호 (『왜 사는가』)👁️ 조회수: 1,698 views

기차! 영원한 노스탤지어

내가 생전 처음으로 기차를 본 건 아홉 살 되던 해 이른 봄이었다. 보리싹 파릇파릇 솟아오르고, 종달새가 하늘 가득히 그 노래를 깔 무렵이었다.
내 고향은 아주 작은 산골마을이다. 나는 이 마을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한학자(漢學者)이며 지주인 가문에서 태어나 평온하게 자랐다. 일곱 살 때 아버님을 잃고, 여덟 살 때 그곳 용인군 이동면에 있는 송전 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가서 일학년을 마치고, 봄방학 때 서울로 올라왔던 거다. 내 고향 난실리에서 기차를 타는 오산(烏山)까지는 40리 길 그때, 자동차도 없어서 걸어서 나와야 하는 길이 있다.
타박타박 걸어서 다니는 40리 길, 가다간 쉬고, 기차 시간을 어렴풋이 대서 나오는 40리 길, 지금도 그 40리 길의 어머님과 나와의 풍경을 잊을 수 없다.

이 길은 언젠가 왔던 길
아, 그렇다.
어머님하고 마차로 갔었지.

이 길은 언젠가 왔던 길
아, 그렇다.
아카시아가 만발하였지.

나는 지금도 오산 40리 길을 왕복할 땐 늘 어머님 생각과 더불어 이 노래가 자연스러이 머리에 떠오르고 입으로 나오곤 한다.
이 시는 일본의 유명한 기다하라 하꾸슈우의 「이 길」이라는 시이며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즉흥적으로 번역해 본 거다.

기차를 처음으로 탔다. 그 무서움, 그 놀라움, 그 신기함, 나는 어머님을 꼭 붙들고 있었다. 기차가 달려 지나가는 건지 논밭이 달려 지나가는 건지, 차장에 비치는 눈부신 광경, 나는 아무 말 못 하고 그저 서울까지 어머님을 꼭 붙들고 있었다.
서울역 그땐 경성역에서 처음으로 그 기차를 몰고 온 기관사를 목격했다. 그 무시무시한 기차를 몰고 온 그 장사를 보았던 거다. 그 모자를 쓴 모습이며, 모자 줄을 턱에다 걸친 모습이며, 꺼먼 얼굴이며, 그 제복 차림. 그때 그 순간 나는 커서 저 사람 같은 기관사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틈이 나면 염천교 다리 위에 가서 그 엄연한 기관사를 내려다보고 기차를 내려다보곤 했다. 그리고 무한한 노스탤지어에 잠기곤 했다. 나는 이 염천교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미동 공립 보통학교 이학년에 편입하고 있었다. 때문에 시간이 나는 대로 이 다리 위에서 온종일 멍하니 정신을 잃고 기차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라면 무한히 벌판을 달리는 기차를 그리곤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나의 꿈, 그 상상의 세계에서 무한한 꿈, 그 상상의 여행을 하곤 했었다. 그것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지리 시간이 되면 신이 났다. 지도를 그리고 철도를 그려 넣으며, 마을•도시를 마크하며. 그 고장의 풍경, 그 고장의 인물들을 상상하면 불현듯이 그곳에 가고 싶은 생각, 그런 흥분 속에서 나는 자랐다.

온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연락선이 왔다 간다는 항구로
남행 열차는 쉴 새 없이 달렸습니다.
삼등실 좁은 차창에
빗물이 흐르고 흐르고
수족관에 뜬 어린 시같이
싹튼 보리밭이 보이고
포플라가 보이고
늙은 산맥이 보였습니다.
말소리도 잠들어 버린 차간에
나는
중앙아시아 어느 바다로 가는 것일께니, 하고
졸음 없는 눈을 감아 보았습니다.
「옛 엽서」

자라서 나는 기관사가 되지 못하고 시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 이 시는 나의 제1집 󰡔버리고 싶은 유산󰡕속에 있는 작품이지만 나는 이렇게 기차 속에서 무한한 상상의 여행을 하는 거다.
이 시는 내가 일본의 수도 도쿄로 들어가던 때의 경부선 열차 속에서 쓴 「옛 엽서」이다. 경부선이라는 지구상의 어느 철도, 그걸 타고 내가 내려간다는 생각, 비가 오는 늘어진 산줄기, 늙은 노년기의 지형, 문득 중앙아시아 지방이 생각났었다. 그곳 어느 항구로 내가 가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곳에서는 어느 또 다른 육지로 가는 연락선이 대기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러한 작품 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마음대로 상상을 하면서 기차를 타는 걸 즐긴다. 질주하는 차창에 영사되는 풍경, 그걸 내 마음대로 바꾸어서, 생각을 한다는 거다. 스칸디나비아에 가고 싶을 맨, 같은 경부선을 타고서도 그 지방 스칸디나비아를 생각하면 스칸디나비아를 여행하는 기분이 드는 거다. 그리고 알래스카 어느 지방을 여행하고 싶을 땐 그곳의 풍경을 상상하면서 그곳을 내가 지금 여행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 또한 그 지방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곤 하는 거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내 마음대로 내 기분을 바꾸면서 기차 여행을 하곤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무척이나 여행을 즐겼다. 혼자 여행을 즐겼다. 그래서 그랬던지 지금까지 내가 이 세상에서 여행을 한 나라만 해도 36개국이나 된다. 이 많은 세월의 이 많은 여행을, 그것도 대부분 낮에만 했다. 밤차나 밤비행기는 부득이할 때를 제외하곤 항상 낮차 낮 비행기를 타곤 했다. 보다 많이 보고, 보다 많이 생각하고, 보다 많이 느끼고 그것으로 보다 많은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밤 여행은 참으로 무의미한 게 아닌가. 그런데 먼 여행 쉰다 해서 밤을 택한다든지, 밤 비행기를 택해서 술 마시고 잔다든지, 이러한 친구들을 많이 접한 일이 있지만, 이런 친구들은 여행의 참맛을 모르는 친구들이다. 차창으로 이동하는 무수한 자연, 그 아름다움을 모르는 친구들이다. 여행은 목적지만이 여행 장소가 아니니까. 마침내 인생과 같이.
도쿄 유학시절 나는 뜻하지 않게 많은 장학금을 여러 곳에서 받았었다. 덕분에 돈이 남아서 여행을 많이 했다. 어느 해 겨울 일본 중부지방 나가노 지방을 여행한 일이 있었다. 도쿄에서 나가사끼, 나가노, 나이가다로 빠지는 신에쓰센을 타고 중부 고원지대로 접어들었다. 이곳에 유명한 가루이자와라는 피서지가 있고, 고모로란 시로서 유명한 고성지가 있다. 일본 명치시대의 유명한 시인 시마사끼 도오손의 시 「고모로 고성에서」로 유명한 고모로(小諸).
이곳은 너무나 작은 산역이어서 내가 탄 급행열차는 쉬지를 않았다. 쉬면 내려서 사진이라도 하나 찍을 생각이었다. 마침 옆자리에 여학교 2학년쯤 보이는 여학생이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심심도 해서 “학생 고모로가 여긴가요?” 했더니 “네 시마사끼 도오손 선생의 고모로는 저 산 쪽입니다.“ 하고 머리를 숙인 채 대답하더니 얼굴을 들고 “고향이 어디세요?” 하고 되묻는 게 아닌가. “서울입니다.” 했더니 “아, 가고 싶어요.” 하길래 “친척이라도 있습니까?” 했더니 “아네요, 다만 멀어서 가고 싶어요.” 이렇게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이 말에 한없는 인생과 같은 시정을 느꼈던 거다.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먼 곳을 동경하는 거다. 그 미지의 세계를.”
이러한 “멀어서 가고 싶은 곳” 그곳을 끝없이 이어 주고 있는 게 철도, 그 길이 아닌가. 지금은 세계를 도는 기차가 있어서 그 기관사가 되라면 대번 되겠다고 나서고 싶은 심정, 아직도 그걸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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