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셀러의 변(辯)
시인이나 작가에 있어서 자기 작품이 베스트 셀러가 된다는 것은 확실히 즐거운 일이다. 보람있는 일이다. 생기가 나는 일이다. 용기가 나는 일이다. 더욱더 좋은 작품에 대한 의욕이 생겨나오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항상 자신이 없는 자기 존재에 대해서 약간의 위안을 얻는 일이 된다.
그런데 우리 한국에 있어선 베스트 셀러가 되면 일단 부끄러움으로 움츠리게 되는 마음이 있다. 베스트 셀러가 반드시 훌륭한 작품이 아니라느니 걸작품이 아니라느니 하는 글들이 신문이나 문학잡지 같은 지면에 대문짝만한 글자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 팔리는 작품이 훌륭하다느니 과작(寡作)하는 작가•시인이 위대하다느니 하는 평론들이 나돌곤 하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문학 풍토가 형성되었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물론 그러한 글에 휘말리는 바보는 아니지만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때론 속상할 때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건 다 무시하고 나는 나에게 충실히 ‘나’를 살고 그 충실히 사는 삶을 충실히 써내려가고 있지만 실로 고독할 때가 많다.
어째서 잘 팔리는 작품은 대중문학이고 통속문학이고 가치가 없는 작품들이란 말인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왜 문학을 하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 독자 없는 작품들이 작품들인가. 일단 작품이라고 발표하고 인쇄를 하고 출판을 했다면 그걸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서 읽는 작품들이 베스트 셀러가 아닌가. 그렇다면 어째서 베스트 셀러 작품들은 통속적이요, 대중적이요, 예술성이 희박한 작품들이란 말인가. 참으로 웃기는 나라, 웃기는 문단, 웃기는 평론가들이다.
어느 시인, 어느 작가는 베스트 셀러가 되게 하기 위해서 작품을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온 혼신을 다해서 자기에게 충실히 보다 깊은 자기 사상을, 보다 넓은 자기 경험을 보다 정확한 자기 감정, 자기 생각, 자기 주장, 자기의 정신세계를 그려나갈 뿐일 것이다.
진실한 고백, 정직한 표현으로 일관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작가나 시인은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더우기 시인은.
특히 나 같은 사람은 아직도 ‘나’ 이외를 시로 써본 일이 없다. 어느 작품이나 시의 테마도 ‘나’요, 시의 소재도 표현도 ‘나’다. 나는 아직도 나를 발굴하는 데 쉴 새가 없다. 나를 발굴해서 나를 다시 형성해 가는 데 전심 전력을 쏟아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솔직이 말해서 나는 시를 문제 삼지 않았다. 다만 나의 존재, 그 생존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어떻게 시를 쓰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였었다. 나는 그 어떻게 사느냐를 시로써 써 왔던 것이다. 말하자면 나의 시는 나의 인생이요, 나의 인생은 곧 나의 시였었다. 나는 한 번도 시를 만들어본 일이 없다. 흔히들 현대 시는 머리〔知性〕로 만들어내는 것, 창작해 내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다만 나의 인생을 그대로 그려냈던 것이다. 그것의 하나가 사랑이 가기 전에(1955.11.5. 정음사)」이었고 남남(1975.7.20. 일지사)」이었다. 사랑이 가기 전에는 한 여인을 사랑한 기록이다. 그것이 부끄럽게도 1955년도의 공전의 베스트 셀러였었다. 이것도 하나 가식이 없는 나의 마음들이었다. 이 시집이 이렇게도 많은 독자를 갖게 된 것은 그 무렵의 한국인이 나와 매한가지의 환경 속에서 지독히 외로웠던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실로 그 무렵 나는 지독히 외로웠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이 사랑을 하게 했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처럼.
이번 남남이 또 그렇게 많이 나갈 줄은 몰랐다. 이 남남은 현대시학에 연재하던 작품을 일지사에서 출판한 것인데 이 속엔 지금까지 내가 관계하던 대인관계를 솔직한 고백으로 써 내려갔던 것이다. 작품 하나하나에 다 대상이 있다고 해도 좋다. 그러나 지금 그것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나는 이렇게 주로 인간 현상 속에서 나의 시를 써 오고 있는 것이다. 먼 훗날에 나를 그대로 보기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