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60호 (『왜 사는가』)👁️ 조회수: 1,837 views

좋은 술, 좋은 나라

‘살며 생각하며’ ——실로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술을 마셨을까? 어마어마한 양의 술을 마셨던 게 아닌가. 한때 서울 명동을 술을 마시고 살았던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6•25동란을 전후해서 그 불안하고 부조리한 조국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술을 마시게 하는 사회, 술을 마시게 하는 나라, 술을 마시게 하는 시대, 우리들은 그 와중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 거로 인하여 실로 많은 벗들이 몸을 상해서 먼저들 떠났다. 아직도 살아서 좋은 일들을 많이 할 인재들이. 깡 술을 마셨던 것이다. 안주도 없이 술만 마셨던 것이다. 그 술들도 속임수가 많은 가짜 술들이었다. 카바이트 동동주니, 카바이트 양주니, 가짜 위스키니, 참으로 엄청난 사기 술을 마시며 용케도 우리들은 지금 이렇게 살아남은 것이다.
실로 얼마나 많은 가짜 술이 부산 임시수도에서, 수복 서울에서 범람했었던가. 지금 생각하면 몸서리가 난다. 그러한 술을 우리들은 밤새도록 우리들의 공동운명을 슬퍼하면서 서로 권하고 마셨던 것이다. 모두들 가난했고, 정신이 순결했고, 서로 인정이 많았고, 고독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다음과 같은 시를 쓴 일이 있다.

아무리 뭣한들 그럴 수가 있는가.
술을 속이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돈과 입술은, 간혹
젖어서
서로를 속이는 수가 있다곤 하지만
선량한 시민들이, 한 저녁
즐겁게 마시는
즐거운 술을
속이다니, 세상에 그러한 나라가
어디 있단 말인가!

거짓말 술
거짓말 돈
거짓말 입술
모든 것이 빙빙 돌아 거짓말투성이
스스로 까마득한 거짓말투성이
명동 열 한 시
구름다리 꼭대기
대통령 각하!
우리들의 생존은 모두 외상투성입니다,

아, 꿈이여
희망이여
이상이여
철학이여
시여
갈망이여
생명이여
단 한 번 지불하는 인생이여
안녕!
안녕!
안녕!

나의 제9시집 󰡔밤의 이야기󰡕(1961.10.30)속에 수록되어 있는 제38장의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 시의 시대적 배경은 1959~60년경, 그 정치적으로 불안하던 시대였으며, 장소•환경적 배경은 대한민국이고, 그 중심인 서울이고, 그 중심은 명동이었다.
참으로 캄캄한 불안과 가난한 연대를 속으며, 속으며 인간의 순정을 살아 왔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좀 나아졌다곤 하지만 아직도 그 속임수의 상술은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옛날보다는 국민들 모두가 그런대로 윤택하고, 풍부히 살아가면서.
술에 방부제를 섞었느니 안 섞었느니, 빵에 방부제를 섞었느니 안 섞었느니 하는 말들이 아직도 주위에 쟁쟁한다. 나는 여름에도 청주를 마신다. 그 무더운 한여름에도 청주를 마신다. 친구들은 의아해들 한다. 맥주값이 비싸서 청주를 마시는 게 아닌가 하고,
그러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절기를 줄곧 청주, ‘백화수복’만 마시고 살아온다. 나라가 잘 되려면 그 나라 술이 좋아야 한다. 국민들이 즐겁게 마시는 좋은 술이 있어야 한다.
구라파 선진국들을 보자. 영국이고, 독일이고, 프랑스고 모두 자기네들의 좋은 술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좋은 위스키, 좋은 맥주, 좋은 포도주, 그것이 좋은 국민들을 만들고, 좋은 정치를 만들고, 좋은 나라를 만들고, 좋은 부흥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이웃 나라 일본도 그렇다. 값은 또 얼마나 싸냐 말이다. 건강처럼 마실 수 있는 값싼 술이 나라 어디에서나 있어야 한다. 일본이 잘 사는 것도 이 좋은 술에 있다고 본다.
우선 그들은 정직하다. 순곡주(純穀酒)면 순곡주라고 적어서 판다. 합성주(合成酒)면 몇 퍼센트의 합성주라는 것을 명확히 밝혀서 판다. 그리고 지방마다 그 지방의 술이 있다. 아늑한 고향의 체온처럼.
좋은 술이 있는 나라, 속이지 않는 술이 있는 나라, 값이 싸고 건강처럼 마실 수 있는 술이 있는 나라,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Translate »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