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꿈
여성의 아름다움, 이것을 어떻게 보편적으로 쓸 수가 있을까. 사람에 따라서, 보는 각도에 따라서, 가치 판단에 따라서, 취미에 따라서, 또한 그 환경에 따라서, 그 아름다움의 정의가 달라지는 게 아닐까. 혹은 직업에 따라서.
구식인지 몰라도 나는 그리 화장을 안 하는 여성을 아름답게 보고 싶다. 화장을 한다 해도 엷게, 우아하게, 은근히, 자기 자신의 몸, 그 자연스러운 모습에 어울리게 하는 화장한 여인을 이쁘게 보고 싶다. 요란스럽지 않은.
요란스럽게 화장을 한다든지, 요란스럽게 옷을 입는다든지, 이상스러운 스타일의 머리치장을 한다든지, 하는 여성은 우선 나에게 피곤을 준다. 보통 피곤이 아니라 압도당하는 피곤을 준다. 짙은 화장은 일종의 가면(假面)이 아닌가. 그것은 제 얼굴이 아니다. 날 때부터 자기가 타고난 얼굴이 아니다. 자기가 창작한 제2의 얼굴이다.
창작한 얼굴, 그것은 아무리 화장을 잘하고 꾸미고, 창작을 했더라도 자연 그대로의 얼굴보다는 못한 법이다. 바르고 지우고, 다시 바르고 다시 지우고, 참으로 대단한 노동을 그러한 짙은 화장의 여인들에게서 느낀다. 동시에 시간의 아까움을 생각하곤 한다. 물론 짙은 화장이 습관화된 여인들에겐, 화장하는 그 자체가 즐거운 노동이겠지만.
시간을 이러한 겉모양에만 쏟는 여인들은 안 모양을 가꾸는 데는 소홀하지나 않을까. 시간이 없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든지, 그림을 본다든지, 도자기를 만진다든지, 음악을 듣는다든지, 혹은 깊이 인생을 사색한다든지 하는 시간이 거의 겉모양, 그 화장을 하는 데 소비되는 게 아닌가.
교양은 확실히 여인의 매력이다. 전문적인 교양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교양은 그 인간 자체를 품위 있게 하며, 매력있는 아름다움을 더해 주는 법이다. 이렇게 조용하게 교양을 내면적으로 쌓아가는 여인, 이러한 여인은 우리 인간들에게 휴식을 준다. 요란스러움의 피곤이 아니라 정적의 위안 같은 휴식을 준다.
나는 말 많고, 수다스러운 여인을 보면 정신을 잃는다. 가끔 부인이 된 여자 졸업생들이 몰려서 찾아올 때가 있다. 대학 시절엔 조용하고, 화장도 덜 하고, 말도 그리 없었던 그 숙녀들이 갑자기 화장이 짙어지고, 말이 많아지고, 수다가 늘어지는 것을 본다. 이러한 것은 일반적인 경향인 모양이다. 왜, 그렇게 되어 갈까. 자기 철학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통속적인 여인은 확실히 매력이 없는 법이다. 따라서 아름다움이 없는 법이다. 속으로, 속으로, 깊이 자기의 아름다움을 가꾸어가는 여인, 그러한 여인들이 아름다운 것이다.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의지로, 고상한 꿈으로, 스스로의 맑은 철학으로 방지해 가는 여인, 그러한 여인은 아름다운 여인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속화일로(俗化一路)로 낙화해 가는 여성, 흔히 보아 오지만, 확실히 매력이 없다. 정이 떨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마음에 시가 없고, 철학이 없고, 자기를 자기대로 멋있게 만들어 가려는 꿈이 없는 여인들에게 일어나는 살풍경한 현상이다.
아름다움, 그것은 개성이요 교양이요, 가꾸어가는 곳에서 영원히 마르지 않는 마음의 꿈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