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40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2,983 views

명동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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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주·이봉구·박인환·이진섭·박기원·김수영·유호·조영암·임긍재·이명온·이해랑·이인범·
윤용하·한노단·김영주·이순재·박연희·최정희·박계주·안수길·이헌구·김광섭·양주동·이하윤·
이무영·오영진·유치진·김광수·전봉초·김관수·박기준·김영주·김환기·도상봉·윤영자·김진수·
최요안·박화목·장수철·서항석·변영로·장덕조·조지훈·천경자·이마동·이종우·오종식·오소백·
조흔파·이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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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나 옛날이나 나는 세상을 떠서 살아오는 것 같다. 가장 심각하게 자기가 살아가는 시대와 사회를 생각하면서도 끝판에 가선 언젠가는 버리고 떠날 이 세상을, 하면서 자기가 꿈꾸고 있는 또다른 세상으로 머리를 돌리는 수가 많았다. 현실과 꿈, 그것을 살아가면서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그 꿈을,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그 꿈을, 고독하면 고독할수록 그 꿈을, 생존의 등대처럼 밝히며 살아오곤 했다.
이렇게 나는 내가 살고 싶은 꿈을 더듬어 살아오는 편에 오히려 인생의 비중이 컸기 때문에 현실을 단단히 밟고 살아오면서도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착이 희미했었다. 때문에 이렇게 세월을 많이 보낸 이러한 자리에서 내가 살아온 그 현실들을 기억하기엔 너무나 아리송한 것들이 많다.
참으로 아슬아슬하게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그것들이 그렇게도 심각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함에 지나간 먼지들 같기만 하다. 바람에 휩쓸려 간.
나는 긴 세월을 물리화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실험실을 잃고, 연구실을 잃어서 도저히 그 꿈, 물리화학의 길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시작한 나의 시의 길, 그것은 한마디로 꿈의 좌절이 었다.
이러한 꿈의 좌절로 인해서 쏟아져 나온 나의 상처진 정신의 배설물들, 그 무수한 시들이 󰡔버리고 싶은 유산遺産󰡕(1949.7.) 󰡔하루만의 위안慰安󰡕(1950.4.)󰡕 󰡔패각貝殼의 침실寢室󰡕(1952.8. 부산)」, 󰡔인간고도人間孤島󰡕(1954.3.) 󰡔사랑이 가기 전에󰡕(1955.11.) 이렇게 스스로 스스로의 존재存在의 숙소를 만들며, 떠나며, 고독한 연대에 고독한 생존을 이어왔다.
이 무렵, 나의 정신의 위안처는 명동이었다. 다방이었다. 술집이었다. 생리적으로 마음 맞는 벗이었다. 그 밤들이었다. ‘라포엠’, ‘모나리사), ‘동방문화살롱’, 이런 찻집 이름들이 기억나며, 향원’, ‘나이야가라’, ‘뉴나이야가라’, ‘봉 소아’, ‘블랙 스톤’, ‘카리레오’, 이런 단골로 다니던 밥집, 술집, 바(양주집)들이 기억나며, 무수한, 실로 무수한 작은 동동주집, 빈대떡집 들이 머리에 가득히 떠오른다. ‘은성’이라는 술집은 비교적 늦게 생긴 집이며, ‘명천옥’은 내가 잘 안 가던 술집이었기 때문에 내가 언급할 곳은 못 된다.
그때도 파들이 있었다. 그룹들이 있었다. 문인협회파, 자유문인협회파, 평안도파, 함경도파, 경상도파, 호남파, 펜클럽파 이러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 친소관계를 가지고 그들이 끼리끼리 모이는 다방, 술집들이 따로따로 분포되어 있었다.
문인협회파에 가까운 그룹들은 경상도파, 호남파, 경기도 충청도 문인들이었고, 자유문인협회파에 가까운 그룹들은 함경도파, 평안도파, 펜클럽파 주로 이북 월남문인들이 많았다.
이러한 것들은 이데올로기보다는 개인 개인의 생리적인 것에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다방 ‘갈채’와 술집 ‘명천옥’은 문인협회파들의 단골이었고, ‘모나리사’, ‘동방문화살롱’들은 자유문인협회파들의 단골이었다. 이들의 술집은 일정한 곳이 없었고, 여러 곳에 산재하고 있었다. 한 때 뒤늦게 생겼다 없어진 ‘포엠’이나 ‘은성’이 비교적 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물론 공초 오상순 선생이 진을 치고 있던 ‘청동’다방도 있었고, 영화인들의 단골이었던 ‘은지’다방도 있었고, 음악을 좋아하던 문인들이 모이던 ‘돌체’다방도 있었다. 작고한 이진섭의 단골은 비교적 이 다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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