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적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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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장만영·김경린·이봉구·양병식·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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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분들은 당대의 당당한 모더니스트들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새로운 시의 개척자들, 그 모더니스트들에 의하여 한국문단에 이름을 걸게 된 거다. 우선 멤버가 그러해서 기뻤다. 당당한 사람들이 연약한 나의 시의 울타리가 되어 있어 마음이 든든했다. 흐뭇했다. 마음이 푹 가라앉는 걸 실감했다. 하나의 큰 터널을 뚫고 나온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공허했다. 자기해체 같은 기분이 들었다. 중학교 4학년시절 머릿속에 넣었던 괴테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은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방황하는 것이다’(파우스트」), 그 방황의 말이.
실로 방황이 시작된 거다. 물리화학에서부터 떨어져나가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그렇게 달라붙어서 안 떨어지려고 결사적으로 고민했던 그 꿈으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한 거다. 물리화학으로 무언가 이름을 세우려고 했던 고등사범학교 시절의 그 꿈. 제1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에 이어 곧 제2시집 하루만의 위안慰安이 나왔다(1950.4.13. 산호장), 그리고 한국전쟁이 났다. 부산으로 도망을 했다. 임시 수도 부산에서 제3시집 패각貝殼의 침실寢室이 나왔다.(1952.8.18.). 서울이 수복이 되었다. 수복해서 바로 제4시집 인간고도人間孤島」가 나왔다(1954.3.20.). 그리고 바로 제5시집 사랑이 가기 전에가 나왔다(1955.11.5. 정음사).
순식간에 이렇게 시집들이 쏟아져 나왔다. 실로 순식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짧은 시일 내에 5권의 창작시집이 나의 작은 존재의 성곽처럼 생겨났다.
그리고 1955년 가을학기부터 중앙대학교 문리과대학에 ‘현대시론’ 이라는 강좌를 의뢰받아 출강하게 되었다. 그 당시의 학장은 백철 평론가. 백철 선생은 나의 도쿄 고등사범학교의 드문 선배, 영문과 출신이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시의 길, 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된 과정의 전부이다. 그리고 지금도 항상 문학에 접어들 무렵의 그 불안과 모색과 방황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머무르지 않는 동경으로 시의 길을 가고 있다.
말하자면 나에게 있어서 나의 시집들은 그 시기 그 시기에 내게 있었던 그 불안, 그 모색, 그 방황,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머무르지 않는 동경, 그것들이 같이 동숙하던 고독한 여숙(旅宿)들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제1여숙, 버리고 싶은 유산은 그 첫 출발지의 숙소였다. 그리고 지금 제42여숙 시간의 속도(1995.10.31. 융성출판)를 지나서 또 하나의 새로운 숙소를 향해서 동반자없는 외로운 단독자의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길은 영원한 노스탤지어
너는 지금쯤
어느 길을 가고 있는가.(「길」, 1988.12.)
다음 숙소는 어디메쯤 있을까. 그곳에선 좀 신을 벗고, 옷을 벗고, 쉴 수가 있을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