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39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3,009 views

나의 문학적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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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장만영·김경린·이봉구·양병식·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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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분들은 당대의 당당한 모더니스트들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새로운 시의 개척자들, 그 모더니스트들에 의하여 한국문단에 이름을 걸게 된 거다. 우선 멤버가 그러해서 기뻤다. 당당한 사람들이 연약한 나의 시의 울타리가 되어 있어 마음이 든든했다. 흐뭇했다. 마음이 푹 가라앉는 걸 실감했다. 하나의 큰 터널을 뚫고 나온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공허했다. 자기해체 같은 기분이 들었다. 중학교 4학년시절 머릿속에 넣었던 괴테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은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방황하는 것이다’(󰡔파우스트」), 그 방황의 말이.
실로 방황이 시작된 거다. 물리화학에서부터 떨어져나가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그렇게 달라붙어서 안 떨어지려고 결사적으로 고민했던 그 꿈으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한 거다. 물리화학으로 무언가 이름을 세우려고 했던 고등사범학교 시절의 그 꿈. 제1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에 이어 곧 제2시집 󰡔하루만의 위안慰安󰡕이 나왔다(1950.4.13. 산호장), 그리고 한국전쟁이 났다. 부산으로 도망을 했다. 임시 수도 부산에서 제3시집 󰡔패각貝殼의 침실寢室󰡕이 나왔다.(1952.8.18.). 서울이 수복이 되었다. 수복해서 바로 제4시집 󰡔인간고도人間孤島」가 나왔다(1954.3.20.). 그리고 바로 제5시집 󰡔사랑이 가기 전에󰡕가 나왔다(1955.11.5. 정음사).
순식간에 이렇게 시집들이 쏟아져 나왔다. 실로 순식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짧은 시일 내에 5권의 창작시집이 나의 작은 존재의 성곽처럼 생겨났다.
그리고 1955년 가을학기부터 중앙대학교 문리과대학에 ‘현대시론’ 이라는 강좌를 의뢰받아 출강하게 되었다. 그 당시의 학장은 백철 평론가. 백철 선생은 나의 도쿄 고등사범학교의 드문 선배, 영문과 출신이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시의 길, 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된 과정의 전부이다. 그리고 지금도 항상 문학에 접어들 무렵의 그 불안과 모색과 방황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머무르지 않는 동경으로 시의 길을 가고 있다.
말하자면 나에게 있어서 나의 시집들은 그 시기 그 시기에 내게 있었던 그 불안, 그 모색, 그 방황,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머무르지 않는 동경, 그것들이 같이 동숙하던 고독한 여숙(旅宿)들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제1여숙, 󰡔버리고 싶은 유산󰡕은 그 첫 출발지의 숙소였다. 그리고 지금 제42여숙 󰡔시간의 속도󰡕(1995.10.31. 융성출판)를 지나서 또 하나의 새로운 숙소를 향해서 동반자없는 외로운 단독자의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길은 영원한 노스탤지어
너는 지금쯤
어느 길을 가고 있는가.(「길」, 1988.12.)

다음 숙소는 어디메쯤 있을까. 그곳에선 좀 신을 벗고, 옷을 벗고, 쉴 수가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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