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36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3,110 views

나의 문학적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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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장만영·김경린·이봉구·양병식·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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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좌절이었다. 내가 시를 쓰면서 문학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 것은 큰 꿈의 좌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일본치하에서 해방이 되자 그 기쁨도 없이 나라는 좌익이니 우익이니, 신탁이니 반탁이니, 소련 공산주의니 미국 민주주의니, 정치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온 겨레는 해결없는 분열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나는 나의 모교인 경성사범학교(지금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물리선생을 하고 있었다. 매일매일을 고민하면서 하얀 백묵 하나를 가지고 실험도 없이 그냥 일본책을 번역해가며 물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실로 암담했다. 앞날이 캄캄했다. 내가 걸어갈 길이 꽉 막힌 감이 들었다. 짙은 안개가 한꺼번에 나에게 불어닥쳐 갈 길을 잃고 말았다. 다음과 같은 시가 나도 모르게 나와버렸다.

바다엔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허무한
희망에
몹시도 쓸쓸해지면
소라는 슬며시
물 속이 그립답니다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소라의 꿈도
바닷물에 굳어간답니다

큰 바다 기슭에
온종일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제목 「소라」, 첫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에 수록을 했다. 1946년경의 작품, 말하자면 이것이 해방 후에 우리말로 쓴 첫 작품이었다.
해방 후의 나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다니던 학교가 학교이었던 만큼 친구도, 선배도, 스승도 불모한 처지였다.
경성사범학교가 그러했고, 일본 도쿄 고등사범학교가 그러했다. 한국인 동창이 거의 없던 학교들, 나는 조국에 돌아와서 조국의 이방인처럼 정을 붙일 곳이 없었다.
더구나 슬펐던 것은 실험실이나, 연구실이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내가 살아갈 마당을 잃은 것이다. 그저 물리나, 수학이나, 선생을 하면서 봉급생활자로 침전해갈 수밖에 없었다. 매일매일이 우울해졌다. 포기였다. 좌절이었다. 한심이었다. 절망같은 어둠이었다. 다음과 같은 시가 또 나왔다.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줏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제목 「추억」, 역시 첫시집에 수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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