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37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3,098 views

나의 문학적 고백

—————————————————————————–
김기림·장만영·김경린·이봉구·양병식·백철
—————————————————————————–
이런 것이 나오고 보니 우선 스스로의 위안이 되었다.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것도 나왔다.

바다
겨울바다는
저 혼자 물소리치다 돌아갑디다

아무래도
다시 그리워
다시 오다간 다시 갑디다

해 진 해안선에 등대만이
말 모르는 신호를 반복하지만
먼 바다 소식을 받아주는 사람 없어

바다
겨울바다는
저 혼자 물소리치다 돌아갑디다.

제목 「해변」, 역시 첫시집에 수록을 했다.
이러한 자기고독과 자기위안 같은 것이 계속되어갔다. 1946년, 1947년, 이러한 불안과 절망의 계절을 보내고 있었다.
이 계절에 편석촌(片石村) 김기림(金起林) 시인과 만나게 되었다. 편석촌은 해방이 되자 이북 함경북도에서 월남을 하여 내가 봉직하고 있던 경성사범학교(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자리를 잡아 영문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매일 한 직장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그의 눈에 나의 시가 발각이 되었다. 그는 놀랐다. 그리고 기뻐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도 수학도 하고 과학정신으로 시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는 일본 동북제국대학 영문학과를 나온 당당한 학자이기도 한, 이미 저명한 시인이었다. 실로 현대정 신에 입각해서 시론을 전개시키면서, 우리나라에 있어서 이러한 모더니즘의 파이어니어였다.
격려를 해주며 시집 출판을 하자고 했다. 부끄러웠다. 시집을 내다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재차 권유하는 바람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다. 장만영(張萬榮) 시인에게 수줍은 원고들이 넘어갔다. 장만영 시인은 그때 산호장(珊瑚莊)이라는 호화스러운 출판사를 차리고 있었다.
그 무렵까지 나의 꿈의 좌절의 배설처럼, 고독의 배설처럼, 절망의 배설처럼, 외로운 단독자의 절규처럼 써두었던 시들이 장만영 시인의 손에 의해서 추려지고 배열되어 김경린(金璟麟) 시인의 장정으로 출판의 옷을 입고 한국문학사, 그 한 대낮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니까 1946년경부터 1948년경까지 모여진 작품들이었다. 시집 이름이 󰡔버리고 싶은 유산遺産󰡕(1949.7.5.).
참으로 나를 스스로 구출하려는 하나의 방법이었으며, 이름 그대로 하나의 스스로의 먼 길의 발견이었다. 어둡고 무거운 유산의 포기, 모든 기존개념, 그 고정개념의 파괴로부터 다시 나의 생존을 이끌어내자는 생각이었다.
조촐한 출판기념회가 마련되었었다. 김기림·김광균·장만영·이봉구(李鳳九)·양병식(梁秉植)·김경린, 이런 분이 중국요리집에서 회동이 되어, 백양사 간행 󰡔조선문예사조사󰡕(백철 저)를 선사받았다.

Translate »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