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34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3,245 views

명동, 그리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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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조연현·곽종원·박목월·최인욱·박용구·김광식·이범선·곽학송·박기원·김윤성·김광주·이해랑·한노단·이봉구·윤용하·이인범·전봉초·박인환·이진섭·김수영·조영암·조지훈·박연희·김진수·박고석·김환기·장욱진·유호·김영주·이순재·이명온·조애실·조경희·최요안·이헌구·안수길·이하윤·박진·
김광섭·이무영·박계주·김내성·유두연·황순원·양명문·김동진·최정희·손소희·박화성·박영준·이원섭·오영수·이형기·허윤석·전광용·정한모·정한숙·김광섭·모윤숙·김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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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한국전쟁까진 협회파와 동맹파의 극렬한 투쟁이었다고 하면,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은 협회파와 동맹파와 도강파와 비도강파와의 분열, 반목, 심한 냉전으로 계속되었다. 협회파는 우익의 각 협회를 말하는 것이고, 동맹파는 좌익의 각 동맹을 말하는 것이다.
명동, 한마디로 저녁이면, 그리고 밤이면, 협회파들·동맹파들·도강파들·비도강파들, 서로 속들은 모르나 끼리끼리 어울려서 밤깊도록 슬프고, 쓸쓸하고, 불안하고, 고독하고, 암담하던 생존을 서로 술로 녹이며 살았다. 슬픈 조국을.
비슷비슷한 사정에, 비슷비슷한 체온에, 비슷비슷한 처지에, 비슷비슷한 환경에, 비슷비슷한 이해관계에, 비슷비슷한 인생관으로 끼리끼리 다방을, 술집을 유전하면서 그 어려운 시절을 보냈던 것이 아닌가.
순수문학을 지향하던 오늘의 󰡔현대문학󰡕, 그리고 ‘한국문인협회’의 주류를 이루던 협회파·도강파, 그것에 동반하던 인사들이 자주 모이던 곳은 ‘갈채’라는 다방, 그리고 ‘명천옥’이라는 술집이었다. 이들은 일단 명동의 중심에 있던 ‘갈채’다방에 모여들었다가 저녁이 되면 어슬렁어슬렁 명동 입구에 있던 ‘명천옥’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김동리 선생을 중심해서 조연현·곽종원·박목월·최인욱·박용구·김광식·이범선·곽학송·박기원·김윤성…… 나는 이곳의 단골이 아니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러한 분들이 거의 매일밤 모여들어 주석을 벌이곤 했다.
그러나 우리들 김광주씨를 중심한 명동파의 아지트는 달랐다. 우선 명동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모나리사’다방이 제1시기의 제1아지트였다. 우선 이곳에 모여들었다가 끼리끼리 각자각자의 술집으로 방향을 잡아 나가곤 했다. 그러다가 돈없던 문인들, 차를 잘 마셔주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예술가들이 하도 많아져서 영업이 되지 않는다는 구실로 말하자면 축출을 당하게 되었다. 차를 팔아 주지도 않고 온종일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을 ‘석고상’이라고 했다. 그럴 정도로 다방에서 싫어들 했다. 그때 때마침 문화인들을 위해서 개업을 한 다방이 생겼다. ‘동방문화살롱’이 그것이었다. 이 다방은 지금의 외환은행에서 명동으로 들어오는 길가에 있었다. 이 다방이 생기고부터는 ‘모나리사’ 석고들은 이곳으로 자연 모이게 되었다. 눈총을 받지 않아도 좋았다. 그만큼 너그러운 마음으로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있었다. 이 집 주인 김 선생은 돈이 좀 많은 분이어서 우리들 가난한 문인들을 위해서 참 좋은 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어느 해였던가. 한강 밤섬에서 있었던 ‘문화인 카니발’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들과 같이 물에 빠져 세상을 떴다. 술들이 취해서 배가 뒤집혔던 것이다. 달밤이었다. 그날 온종일 한강 밤섬 모래사장에선 온 장안의 문화인들이 통술을 갖다놓고 마시고, 뛰고, 노래부르고, 취하고, 엉망진창이 되어 해산들을 했다. 나도 벗어놓았던 옷을 몽땅 잊어버리고 알몸으로 돌아왔었다. 다행히도 밤이었다.
‘동방문화살롱’은 이렇게 제2기의 우리들 명동파의 편안한 제2아지트였다. 그 후 이 다방은 신협(新協) 단장 이해랑씨가 인수해서 부인이 직접 나와 일을 보았다. 이곳에 모이던 문인·예술가들은 실로 외인부대 같은 보헤미안들이었다. ‘명천옥’처럼 어느 단결색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리워서, 서운해서, 외로워서, 궁금해서, 서로 찾아 들었다간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술집을 찾아들곤 했다. 소위 문단적인 섹트의 냄새가 전연 없는 외로운 혼자들이었다. 이러한 우리들 ‘호적이 없는 가족들’은 협회파도 아니었다. 동맹파도 아니었다. 도강파도 아니었다. 비도강파도 아니었다. 그냥 그대로 생존에 상처를 입고 있던 인간파, 바로 그들이었다. 슬픈 조국에서.
김광주·한노단(극작가, 영문학 교수)·이해랑·이봉구·윤용하(작곡가)·이인범(성악가)·전봉초·박인환·이진섭·김수영·조영암·조지훈·박연희·김진수·박고석·김환기·장욱진·유호·김영주(삽화가)·이순재(삽화가)·이명온(수필가)·조애실·조경희·최요안(방송작가), 그리고 이헌구·안수길 ·이하윤·박진(연출가)·김광섭, 때때로 이무영·박계주·김내성·유두연(영화감독), 그리고 수많은 문화부 기자들, 잡지사 기자들, 이런 분들이 우리들 인생의 외인부대처럼, 명동을 끼리끼리 이리 어울리고 저리 어울리고 실로 조직이 없는 인간 가족처럼 배회하며 깊은 술, 깊은 밤을 시대를 응시하며 뜬눈으로 그 슬픈 시대, 슬픈 역사를 살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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