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그리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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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해방으로부터 한국전쟁까지, 그러니까 1945년 8월 15일부터 1950년 6월 25일까지 약 5년 동안,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는 수립되었다고 하지만 우익과 좌익이 극단적으로 갈라져서 치열한 암투가 계속되었었다. 하루도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한국전쟁이라는 끔찍한 난리가 터졌다. 이북의 공산군대들이 탱크를 몰고 순식간에 의정부를 거쳐 서울에 침입해 들어 온 것이다. 비단 의정부 방향에서 뿐만 아니라 38선 전역에 걸쳐서 단숨에 밀고 내려온 것이다. 일요일 아침으로 기억하고 있다. 서울을 점령한 붉은 군대는 또한 단숨에 인천을 점령해버리고 속속 남하하고 있 었다. 국군의 반격이 있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대항이었다. 그렇게도 당당한 위세를 보이던 국군이 이렇게도 단숨에 무너지다니, 국민들의 원한이 말이 아니었다. 이러한 아우성 속에서 이미 붉은 공산군은 수원·오산·평택, 이렇게 천안 방향으로 거의 저항다운 저항이 하나 없이 속속 남으로 남으로 진격해 갔던 거다.
참으로 어이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남한 군대가 쑥밭이 되다니. 나는 처음으로 이북 군대들이 메고 있던 따발총(多發銃)을 보았다. 대단히 매력있게 보였다. 그리고 고성능 무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밀려내려오고 있던 탱크를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서 나는 피난을 가지 못하고 붉은군대들이 점령한 경인지역에 남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설마 죽이겠는가, 그들도 사람인데, 더구나 우리들 같은 서민들을, 정치의 물결 속에서 살던 사람들도 아닌데. 특출나게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이북을 욕한 일도 없고, 공산당을 이렇다 저렇다 비판한 적도 없고, 흔히 말하던 빨갱이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사실 그러했다. 빨갱이라는 말이 잘 안 나왔다. 속된 거 같기도 하고, 좀 야한 거 같기도 하고, 지식인으로서 쓸 말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이것인지 저것인지 의심이 가기도 하고, 직접 공산주의를 살아본 것도 아니고, 해서 그 말을 써본 일이 없었다.
그렇다면 새로 점령해 들어온 그들에게 나로서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인간이 된다. 그렇다면 피난을 가지 않아도 살 수가 있는 게 아닌가. 더군다나 같은 동족끼리니까.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밀려드는 그 붉은 공포와 긴장은 하루도 견딜 수가 없었다. 그저 경우없이, 이유없이, 잡아들이는 것이다. 잡아들이면 그뿐, 가족하고 작별할 기회도 없다. 길 가다 잡히면 그 길로 모든 거와는 작별이다. 소식도 전할 길 없이 가족과 애인과 친지와 떨어져 나가야 하는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정이 통하지 않는다. 사정이 통하지 않는다. 무조건 끌려가는 거, 그것뿐이다.
이런 세상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러한 동족끼리의 무정한 세계가 어디 있단 말인가. 공산세계도 사람이 사는 세계인데, 이렇게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저 매일 매일이 죽음이었다. 죽음의 전율이었다. 살아남은 것이 실로 기적이었다.
이러한 일로 도강파와 잔류파라는 말이 생겼다. 도강파는 남으로 피난간 인사들을 말하는 것이고, 잔류파는 강을 건너 피난을 가지 않고 적치하에 남아 있었던 인사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전쟁땐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하고 그 공산치하의 공포와 전율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그 무서운 경험으로 1·4후퇴땐 맨 먼저 부산으로 피난을 가버렸다. 그러니까 6·25와 1.4후퇴 사이에 공산치하에 남아 있었던 인사들의 거취가 문제였었다.
적에게 부역을 한 사람, 그냥 숨어서 지낸 사람, 이것을 가려내는 것이었다. 얼마나 어려운 작업이었던가. 실로 무서운 작업이었다. 도강파는 기세가 등등하고, 비도강파는 부역을 하지 않았더라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부역을 솔선해서 적극적으로 한 사람, 소극적으로 한 사람,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사람, 끌려다니며 한 사람, 실로 가지각색, 산다는 게 슬플 뿐이었다. 가련할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