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30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3,272 views

정년퇴직, 그 고개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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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범·장이욱·김원규·조영식·박종화·김동리·서정주·조연현·황명·김시철·원종성·구인환·김해성·
성춘복·오인문·이상범·이유식·이철호·김신철·홍승주·이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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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물포고등학교에 일년 반인가 잠시 있다가 서울고등학교로 일자리를 옮겼다. 김원규(金元圭) 교장을 이곳에서 만나게 된 거다. 김 교장은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인물평이 격돌하는 교육자였지만 나로서는 내 생애 두 번째로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은인이 아닐 수 없다. 내 마음대로 내가 활동할 수 있는 그 자유와 혜택을 나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그리고 학생들간에, 그리고 교원들간에, 얼마나 엄격하고, 무서운 교장이었던가. 조금도 융통성이 없는 그러한 스파르타식의 교육자, 그 교장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나에겐 실로 눈물 많은, 인정어린, 이해성 깊은 인간, 그 은인이었다. 1949년 2월, 학기 도중이었지만 제물포고등학교에서 교장과 말다툼 끝에 그 자리에서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면담 후, 곧 그다음 날부터 물리 선생으로 채용해 준 것을 위시해서, 근 10년 동안 그곳에 근무하는 동안 물리 선생, 대수 선생으로, 국어작문 선생으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게 해준 것은 김 교장이었다. 지금 그러한 배짱있는 교장이 어디 있으리. 모든 거 자격증을 따지는 판에. 그리고 대학에 출강하는 것도 허락을 해주었다. 나는 그 덕분에 1955년 가을학기부터 중앙대학교 문리과대학에 ‘현대시론’이라는 강좌를 맡아 출강을 하면서 대학교수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지금 그걸 생각함에 그 아득한 모험, 그 모험을 도와준 김원규 교장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내 운명의 길을 찾게 해 준 그 은인으로, 서울고등학교 시절, 참으로 많은 시를 썼으며, 많은 시론을 읽었으며, 많은 시집들을 냈다. 오늘날의 나는 그곳에서 다시 탄생을 했던 거다.
그리고 1959년 4월(그땐 4월이 학기초였다), 경희대학교 문리대 국어국문학과로 일자리를 옮겼다. 그 전년도, 그러니까 1958년부터 전임으로 오라는 것을 서울고등학교에서 만 10년을 채우려고 1년을 더 서울고교에 있었다. 당시 경희대학교는 아직 신흥대학의 이름으로 있었으며 청량리 밖 회기동 골짜기에 넓게 자리잡고, 한참 건물들을 증축해나가고 있었다. 부임하자 조교수의 임명장을 받았다. 그 누구도 첫 해는 전임강사라 했다. 그걸 보면 조영식(趙永植) 총장이 나에게 큰 은혜를 주었던 거다. 조총장은 우선 출판국을 창설하라고 했다. 초대 출판국장의 보직을 맡았다. 교과과정이니, 학생수첩이니, 교직원수첩이니, 하는 것부터 시작을 해서 대학화보니, 교과서니, 모든 출판물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 총장의 부탁으로 대학 응원가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시작한 경희대학교 근무 22년간, 학과장·문리대 학장·교육대학원장, 심지어는 음악대학 학장도 겸직을 하기도 했다. 얼마나 그분이 나를 신용했기에 그렇게도 많은 일을 나에게 시켰을까. 그리고 내가 해외여행을 떠날 때마다 불러서 “이거 술 좀 자시고 오시오.” 하면서 적지 않은 용돈을 주곤 했다. 그것뿐이던가. 내가 추천하는 교수들은 무조건 “좋습니다.” 하면서 채용해주곤 했다. 물론 그 교수들은 모두 경희대학교를 살찌게 하는 교수들이었다.
참으로 22년간의 긴 세월이 하루같이 즐겁던 경희대학교의 교수생활, 그렇게 해준 건 오로지 조 총장의 우정 어린 사랑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문예장학생들을 키워서 우리 문단에 시인·소설가·평론가들을 배출했던가.
한마디로 말해서 나의 경희대학교 22년간의 생활은 이러한 끊임없는 생산(출판물·문예장학생·시인·소설가·평론가·희곡가)과 창작(실로 많은 작품집들)의 세월이었다. 이것 역시 조영식 총장이라는 은인 때문에 이루어진 나의 운명의 성숙기이었다.
이렇게 신기범 은사님, 그리고 김원규 교장, 조영식 총장은 나의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운명적인 은인이었다. 이 세분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고마운 정년을 맞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물리화학을 전공하던 그 꿈의 좌절로부터 시작한 자학과 방황과 고독과 절망으로부터 구출해준 것은 시라는 큰 은혜였다. 그리고 그 큰 은혜를 살 수 있게 해준 위의 세분이었다. 위태로웠던 나의 운명의 세월,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이 하나의 기적이라고만 생각이 되며, 실로 인간의 한 생애가 이렇게도 짧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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