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29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3,240 views

정년퇴직, 그 고개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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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범·장이욱·김원규·조영식·박종화·김동리·서정주·조연현·황명·김시철·원종성·구인환·김해성·
성춘복·오인문·이상범·이유식·이철호·김신철·홍승주·이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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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8월 31일, 나는 인하대학교 대학원 원장을 마지막으로 나의 긴 교직생활을 정년으로 퇴직을 했다. 퇴직과 더불어 내가 얻은 것은 명예교수라는 명예와 국민훈장 모란장이라는 명예였다. 참으로 고마운 선사가 아닐 수가 없다. 지나온 세월, 그 엄청난 나의 회의와 방황, 그 포기와 허무, 고독한 상처와 그 탈출을 회고해볼 때에.

하늘이 마냥 높아만 간다
땅이 마냥 넓어만 간다
공기가 마냥 무거워만 간다
몰려드는 고요함,
찡, 귀가 멀어간다.(1988.8.29.)

이러한 생각이 지나갔다. 생활을 해오면서 정년의 그날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정년을 하고 보니 한꺼번에 고삐가 풀려난 거 같은 해방감과 허전함과 허탈감 같은 것이 동시에 범벅이 되어 자유라는 그 걷잡을 수 없이 텅 빈 고독감이 온 몸을 하늘로 하늘로 띄워올리는 거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동시에 세 사람, 네 사람, 다섯 사람, 나를 정년의 자리까지 이끌어준 은혜로운 얼굴들이 머리에 떠오르곤 했다.
첫째는 내가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 3학년 재학중, 어머님이나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경이 매일같이 공습을 당하던 1945년 봄이던가, 여름이던가 일시 귀국을 했을 때, 나의 모교인 경성사범학교 은사이시던 신기범(愼驥範, 경도대학 영문과 출신, 영어 선생) 선생의 권유로 경성사범학교 물리화학준비실에 그해 7월부터 근무하던 일이다. 어머님을 뵙곤 곧 동경으로 다시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일본이 마지막 오키나와 전투에 몰려 매일같이 공격을 당하자 관부연락선도 불통이 되어 도저히 다시 동경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나의 모교이기도 해서 매일같이 물리화학실험실 겸 준비실로 출근을 하며 학생들의 수업도 하고, 책도 읽고, 그런대로 전공과목인 물리화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자 8·15가 되어 일본은 패망을 하고, 한국은 독립이 되고(당시엔 이렇게 남북으로 분단이 될 줄은 몰랐었다), 남한에 미군정청이 들어서고 모든 남한의 행정은 이 미군정청이 행사하게 되었다.
이 미군정청하에서 모든 학교들이 1945년 9월 1일부로 개학이 되어 모든 학교업무가 다시 시작이 되고, 수업도 시작을 했다. 그때 경성사범학교에 5명의 구직원이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8·15이전에 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사람이 5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그밖엔 모두 일본인들). 때문에 이 5명은 다시 미군정청 문교부에서 정식으로 교유(교사) 발령장을 새로 받아서 정식으로 교원 노릇을 하게 되었다.
이북에서 장이욱(張利都, 후엔 서울대 총장) 선생이 월남해 내려와 교장·학장의 일을 맡았다. 해방 직후엔 경성사범학교 교장, 국대안(국립대학안)이 통과된 후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학장, 이렇게 학교명·교사명들이 변경 진행됐다.
나는 자동적으로 구직원의 한 사람으로 은사 신기범 선생님을 모시고 모교의 교유가 되었던 거다. 물리·수학을 담당했다. 그러나 국대안 반대(좌익) 투쟁이 심하게 되어가자 여기저기서 좌익단체/우익단체, 좌익학생/우익학생들의 테러·폭력사태가 극심하게 벌어져갔다. 가장 맹렬한 우익청년단체는 소위 서북청년회였었다. 이북에서 공산당이 싫어서, 말하자면 자진, 혹은 쫓겨내려온 열렬한 우익사상의 청년들이었다. 각처에서 이 서북청년단들이 좌익단체들을 격파해나갔었다. 참으로 심한 피비린내나는 격투, 그 투쟁기였었다.
그러던 1947년인가, 그해 봄, 야간수업을 하시고 충신동 자택으로 귀가하시던 신기범 선생이 학생 테러에 맞아 절명을 하셨다. 나중에 알려진 결과가 우익학생의 테러, 그것도 서북학생들이라는 것, 신기범 선생께서 왜 좌익학생들을 감싸주느냐, 하는 것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들 우익학생들에겐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신 선생께선 어디까지나 훌륭한 교육자로서, 스승으로서, 학자로서, 양심가로서, 애국자로서 모든 학생들에게 공평한 교육의 사랑을 베풀어왔을 뿐이었다. 당시 갓 생겨난 사범대학 부학장 자리에 계시면서.
아무튼 이런 일이 있고부터 나는 나의 모교에 정이 떨어져서 그해 9월부터 물리선생으로 오라는 지금의 제물포고등학교(당시 6년제 인천 공립중학교)로 자리를 옮겨버렸다.
이렇게 나는 신기범 선생님의 권유로 나의 사회 출발을 나의 모교에서부터 시작을 했던 거다. 그 아슬아슬한 시국에서,
지금 생각을 해보면 얼마나 고마운 운명의 출발이었던가, 그런 생각이 들어 참으로 고마운 은사님, 지금도 그 감사의 마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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