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26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3,207 views

예술원, 수요회 이야기

—————————————————————————–
김동리·이해랑·곽종원·장우성·김경승·유경채·김충현·정한모·심종섭·한표욱·고범준·박성규·전봉초·권옥연·손소희
—————————————————————————–
지금은 예술원과 학술원이 강남에 있는 신축 국립도서관 뒤편에 새로 건축이 되어 자리잡고 있지만, 예전에는 경복궁 내에 있는 이층 석조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기적인 회의가 몇 번 있고, 그때 그때 따라서 각 분과별로 소집이 되는 회합들이 있었다. 예술원 논문집이니, 회지이니, 국제세미나니, 국내세미나니, 지방 고적답사니, 강연회이니, 이러한 것들이 연례행사로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데 하루는 김동리 선생(당시 예술원 회장)이 “조 선생, 수요회에 안 들려오?” 이렇게 물어왔다. “수요회가 무언데요?” 나는 찰나 이렇게 되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답변이 이러했다. 거의가 예술원 회원들인데 술을 좋아하는 몇몇 친구들이 모여서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술을 내는 모임이라 하며, 매달 제3수요일에 모인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김동리 선생하곤 자주 만나뵙는 처지에 있지 않아서 나로서는 조심조심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김동리 선생은 그 성품에 있어서나 문학세계에 있어서나 워낙 확고하신 분이고, 우리들이 속하고 있는 예술원 회장이시고 하여 어려웠지만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즉석에서 답변을 해버렸다.
그렇게 해서 그달부터, 그해가 어느 해였는지는 잊었지만, 아마 11년이나 12년 전쯤 되는 거로 생각되지만 ‘수요회(水曜會)’의 정식회원으로 술의 대가들의 그 술좌석에 참석하게 되었다.
내가 입회했을 때의 멤버는 이러했다. 회장에 김동리 선생, 그리고 이해랑(李海浪)·곽종원(郭鍾元)·장우성(張遇聖)·김경승(金景承)·유경채(柳景採)·김충현(金忠顯)·정한모(鄭漢模)·심종섭(沈鍾燮, 학술원 회장)·한표욱(韓豹頊, 전 주미대사)·고범준(高範俊, 전 제주대학 교수)·박성규(朴性圭, 전 예술원 사무국장), 이런 회원들이었다. 내가 입회한 후 계속해서 들어온 회원으로 전봉초(全鳳楚)·권옥연(權玉淵) 회원이 있고, 명예회원으로 김종필 총재가 있다. 김종필 총재는 국무총리 시절 예술원·학술원을 적극 크게 도와주었고, 그때까지 사용하던 경복궁 내의 건물도 내주었다는 고마움으로 특별히 명예 회원으로 모셨다는 거다.
과연 술의 대가들이었다. 나도 어지간히 술을 마셔온 인생이었지만, 특히 이 가운데서도 김동리 선생의 주량에 대작하기 힘들 정도였다.
내가 처음으로 참석한 술집은 안국동 인사동 골목에 있는 ‘정주(定州)집’이었다. 그런데 그 후로는 이 집에서 수송동 전 숙명여고 옆 골목에 있는 ‘대유(大侑)’로 정기적인 장소를 옮겼다. 이 대유는 내가 인하대학교 부총장으로 있을 때 수시로 이용하던 한식집이다.
술에 한자리에서 여러 가지 술을 섞어 마시면 골이 아프다든지, 몸에 해롭다든지 하는 술꾼들의 말이 있지만, 이 수요회의 술좌석은 그런 것이 없었다. 김동리 회장이 그렇게 여러 가지 술을 한꺼번에 받아 마시고, 권하고, 하기 때문에. 참으로 청탁을 가리지 않고, 술의 종류도 가리지 않고, 그 주량도 가리지 않고, 마시는 대주호의 품격, 바로 그것이었다.
우선 기본으로 나오는 술은 양주·맥주·정종(청주)·마주앙, 네 종류였다. 김종필 명예회원이 담당으로 낼 때에 보드카가 나오지만(본인이 지참).
이 네가지 술이 술좌석을 이리 돌고, 저리 돌고, 맥주를 마시다가도 정종이 오면 정종을 마셔야 했고, 정종을 마시다가도 위스키가 오면 위스키를 마셔야 했고, 위스키를 마시다가도 맥주가 오면 맥주를 마셔야 했고, 맥주를 마시다가도 마주앙이 오면 마주앙을 받아 마셔야만 했다. 적어도 김동리 선생과 나하곤. 다른 회원들은 좀 가려서 자기가 마시던 술만 마시는 분도 있지만, 나중에 서로 권하는 바람에 이 네 가지 술이 범벅이 되어 자욱이 회원들을 취하게 하곤 하는 거다.
이렇게 섞어 마셔도 뱃속에 들어가면 서로 상쇄작용을 일으켜서 그 네 가지 술이 중화된다는 것이 김동리 회장의 술의 지론이다. 본인이 그렇게 섞어 마셔도 그 이튿날 끄떡하지 않는다니 믿는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그 이튿날 아침엔 냉수를 많이 마신다는 이야기.
그러나 나는 수요회의 다음날엔 큰 고통을 치르곤 했다. 요즘도 그렇지만, 작취미성, 온몸이 하늘에 떠 있는 거 같은 기분으로 오전을 지내야만 한다. 한달에 한번 있는 일이라 하지만, 그 술의 여파는 여러날 계속되곤 한다.
수요회마다 오늘은 좀 조심해서 마셔야지 하면서 슬슬 시작은 하나 끝날 무렵이면 만취가 되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수요회의 특색은 이렇게 여러 종류의 술을 돌려가며 마시는 풍경도 있지만 어느 정도 술이 돌면 창가 시간이라 해서 노래부르는 풍경이 시작되는 것이다. 흘러간 노래들, 동요들, 실로 동심으로 돌아가서 노래들을 차례차례 불러야 한다. 이것도 김동리 회장의 뜻에서.
그러니까 수요회에 반드시 노래를 하나 준비해야 한다. 노래에서 명창은 권옥연 화백이다. 한번 일어서서 노래불렀다 하면 세 곡이고, 네 곡이고, 다섯 곡이고, 재창이요, 재창이요 하는 소리와 더불어 실로 듣기 아름다운 명곡들이 계속되곤 한다. 다음의 명창은 정한모 시인이 다. 정한모 시인의 십팔번의 「백마강」이다. 그리고 가장 가사를 잘 외면서 서툴지만 개성있게, 그것도 찢어지는 목청으로 노래부른 것은 김동리 회장이다. 일부러 그렇게 찢어지는 목소리로 숨 다 넘어가는 것처럼 노래부르는 그 매력, 그것은 실로 어느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옛 분위기를 자아내곤 하는 것이다.
요새 사람들하곤 다른 그 인생의 향기, 그 실제, 그 애수, 그 멋, 그것들이 범벅이 되어 술좌석을 더욱 흥겹게 만들어주곤 한다. 나는 이런 곳에서 1930년대의 한국의 문인들의 풍경들을 상상해보곤 한다.

Translate »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