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25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3,279 views

예술원, 그 부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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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춘복·최화국·황금찬·황하수·이우재·이일향·국효문·장석주·박진숙·이문열·차재일·김동리·서정주·윤석중·모윤숙·황순원·곽종원·최정희·박화성·김팔봉·백철·임옥인·박연희·손소희·김윤성·김춘수·
정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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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해오다가 1980년 가을학기에 접어들면서 각 대학가에 심한 학생 데모가 매일같이 계속되었다. 독재정권 물러가라라는 극렬한 데모 선풍이 학원가를 휩쓸어나갔다.
어용교수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총장·학장·대학원 원장·처장들, 소위 교무위원들이 모두 이 어용교수라는 말에 묶여져서 구호마다 어용교수 물러나라라는 큰소리가 나왔었다. 그 어용교수 명단 속에 나의 이름도 끼어 있었다. 나는 그때 교육대학원 원장의 일을 맡아가지고 있었다. 교무위원들의 일괄된 명단이었지만, 심히 기분이 나빴었다. 무어가 어용인가, 학교의 일을 열심히 한 것이 어용이라는 말인가. 그들 학생들이 소리 높여 부르고 있는 응원가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닌가.
그럼, 그만둔다. 이렇게 더러운 오명을 쓰고까지 붙어 있을 생각은 없다라는 생각이 즉각 들었었다.
그렇게 며칠 지나자, 인하대학교에서 새로 생기는 문과대학의 학장으로 오라는 기별이 왔다. 국어국문학과·영어영문학과·독어독문학과·일어일문학과·중어중문학과·사학과·철학과, 이런 학과들이 창설되는 문과대학의 창설학과들이었다. 학과목들이 마음에 척 들어왔다. 특히 철학과가 있는 것이 내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이러한 기분, 저러한 기분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마음을 굳혔던 거다. 더러운 오명을 깨끗이 버리고, 새로운 꿈으로, 하면서 인하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옮기자 . 이 세 말을 굵은 글씨로 써서 문과대학 현관에 걸고, 그 학장의 일을 보기 시작을 했다. 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가 나왔다.

안개로 가는 사람
안개에서 오는 사람
인간의 목소리 잠적한
이 새벽
이 적막
휙, 휙
곧은 속도로 달리는 생명
창 밖은
마냥 안개다.

한마디로 말해서
긴 내 이 인생은 무엇이었던가
지금 아직 말할 수 없는 대답
아직 안개로 가는 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면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던 세상에서
무엇 때문에 나는
이 길로 왔을까

피하며, 피하며
비켜서 온 자리
사방이 내 것이 아닌 자리
빈 소유에 떠서

안개로 가는 길
안개에서 오는 길
휙, 휙
곧은 속도로 엇갈리는 생명
창 밖은
마냥 안개다.
(제25시집, 󰡔안개로 가는 길󰡕, 1981.9.)

이런 기분이었다. 실로 나는 그 역사의 안개를 살아왔다. 그 불안한 생존의 안개를 살아온 거다. 나이 육십을 넘으면서도 그 안개를 살았던 거다. 어디 한 곳, 안심할 곳이 없었다. 마음을 다 풀어놓을 곳이 없었다. 시대가 그러했고, 한국이 그러했고, 사상이나 이데올로기가 그러했고, 나라의 정치가 그러했고, 인심이 그러했고, 문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사회단체들이 그러했다. 어디 한 곳 조용한 곳이 없었다. 불안과 긴장, 그 초조를 살아야 했다. 쫓기며, 쫓기며, 쫓기며 살아야 했다.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기고, 정보에 쫓기고, 그 모든 불안한 생존에 쫓기며 살아야 했다.
나의 시는 어둡다. 시작이 그랬고, 그때가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나의 생애가,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생존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실로 나는 살기 위해서 시를 썼다. 문학을 하기 위해서 시를 쓴 것이 아니었다. 예술을 하기 위해서 시를 쓴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나에게 주어진 그 부조리한 역사 속에서 어떻게 정직하게 사느냐, 살아 남느냐하는 그걸 살기 위해서 시를 썼던 거다.
때문에 나의 시는 나를 떠나본 적이 없다. 내가 살던 시대를 떠나본 적이 없다. 내가 살던 사회를 떠나본 적이 없다. 내가 살던 역사를 떠 나본 적이 없다. 내가 살고 싶었던 그 꿈을 떠나본 적이 없다.
나의 시는 항상 나의 피해자의 입장에서, 내가 살던 시대의 피해자의 입장에서, 내가 살던 사회의 피해자의 입장에서, 내가 살던 역사의 피해자의 입장에서, 내가 살고 싶었던 그 꿈의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 맥을 줄기차게 이어왔다. 이렇게 줄곧, 약했기 때문에 나만을 지켜오던 내가, 일국의 예술원 회원이 되다니, 어딘가 미안스러운 감이 들곤 했다.
이것은 섹트가 아니라 공인된 광장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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