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24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3,342 views

예술원, 그 부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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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춘복·최화국·황금찬·황하수·이우재·이일향·국효문·장석주·박진숙·이문열·차재일·김동리·서정주·윤석중·모윤숙·황순원·곽종원·최정희·박화성·김팔봉·백철·임옥인·박연희·손소희·김윤성·김춘수·
정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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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7월에 서울에서 제4차 세계시인대회가 열린 이후, 나는 자동적으로 이 대회의 국제이사가 되어 매회 대회가 있을 때마다 이곳에 동참하던 많은 시인들과 즐거운 국제나들이 여행을 했다. 작품도 많이 쓰고, 그리고 1980년에 들어서자,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최규하 대 통령의 취임,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 정권의 출범, 문화보호법의 개정, 그 개정된 문화보호법에 의거한 대한민국예술원·학술원의 새로운 출발, 그것에 따른 새로운 회원의 선출, 임명.
이 새로운 선출, 임명에 따라서 나는 1981년 8월 12일부터 생각하지도 않았던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에 피선되어, 임명장을 받았다.
전체 예술원회원의 정원이 50명, 그 중 문학분과에 피선된 사람들 가운데 전번에 이어 계속 임명된 구회원이 김동리·서정주·윤석중·모윤숙·황순원·곽종원·최정희·박화성·김팔봉·백철·임옥인이었던가, 그리고 새로운 얼굴에 박연희·손소희·김윤성·김춘수·정한모·나, 이렇게 있었던 거로 생각이 든다.
실로 뜻밖의 일이었다. 나로서는, 항상 나는 문단 밖에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학단체를 멀리하고, 그 섹트나, 조직 같은 것을 피하며, 피하며 살아왔었기 때문에 문단에 그리 가까운 사람들도 없었고, 오히려 오해 같은 거, 싫어하는 거 같은 거, 외면하는 거 같은 거, 그런 존재로, 그러한 좀 멀리 문단하곤 떨어져 있는 자리에서 혼자 내 길을 문학해왔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엔 나와 가까웠던 분, 나를 아껴주던 분들은 이미 작고를 했다. 또 그러한 나의 주변에 있었던 분들은 하나같이 나와 매한가지로 문단 섹트를 싫어하고, 문단 권위주의를 싫어하고, 오로지 인간을 살던 그러한 고독한 서민들이었다. 때문에 나의 주위에 계셨던 분은 오로지 역사의 단독자, 그 단독자의 생존을 사시던 분들이었다. 김소운 선생이 그러했고, 김광주 선생이 그러했다. 그러한 문단의 서민을 살면서 나는 나의 그 강한 고독한 단독자를 살아가기 위해서 오로지 작품 생활만 해온 거다.
문단에 외면당하면서, 더군다나 평론가들의 관심 밖에서. 사실 그러한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한 서운한 생각이 늘 나를 홀로 부지런하게 만들곤 했다.
그러한 것이 그 나라에서 가장 크고 높은 공인받는 권위있는 단체, 예술원회원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뜻밖의 일이었던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거 같은 고독감으로 살아오던 내가 아니었던가.
영국의 어느 시인 말대로,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진 거 같은 생각이 들곤 했다.
생전 처음으로 기뻤었다.
나는 그 무렵, 그러니까 1981년 3월 1일 날짜로 인하대학교 초대 문과대학 학장으로 서울에서 인천까지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출근하는데 한 시간, 퇴근하는데 한 시간, 도합 두 시간을 길 위에서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참으로 아까운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나의 운명의 길이라 생각하면서, 일요일도 없이 매일 매일을 일 년 열두 달 꼬박 나의 학장실로, 연구실로, 출퇴근을 했다. 그곳에 책이 있고, 작업을 하는 도구가 있고, 작품을 만드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왜, 대학을 옮겼을까. 22년간이나 있었던 경희대학교에서, 경희대학교, 그 경희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부터 그 동산에서 열심히 열심히 일해왔던 것이 아닌가, 출판국을 새로 만들며, 임명에 따라 문리과대학 학장으로, 그리고 교육대학원 원장으로 나의 성실을 다하여 기쁨으로, 보람으로, 일해왔던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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