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인대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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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김요섭·성춘복·김혜숙·이인학·이순신·장익룡·김완순·김경원·김양식·신동춘·유경환·홍윤숙·최원규·김명희·신영철·김정우·김영태·이병석·김후란·박정희·임성숙·황성이·강계순·최화국·김원중·허영자·박현령·김선경·박태진·이충이·오학영·박명용·임성조·서인숙·황금찬·이상인·김현숙·주영하·감태준·차한수·박의상·장석주·김정웅·전규태·양인자·이우재·노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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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플로렌스대회를 보이코트한 샌프란시스코 본부에선 제9차 회의를 인도 마드래스에서 연다고 통지를 해왔다. 우리로선 이 마드래스 대회가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혈통적인 대회이기 때문에 이 대회에 참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987년 12월 28일부터 1988년 1월 2일까지 그곳 마드래스에서 있었지만, 조병화·성춘복·최화국 내외·이우재·허영자·노옥자(현대문학사), 이런 사람들이 참석을 했다. 역시 이 대회는 구라파의 그것과 달리 동양인의 잔치라는 냄새가 짙었다. 그러니까 미모 모리나가 이끄는 룩셈부르크 본부의 세계시인대회는 구라파적이며, 구라파 시인들이 많이 참석을 하고, 중국의 종정문 시인이 이끄는 샌프란시스코 본부의 세계시인대회는 아시아적이며, 아시아 시인들이 많이 참석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렇게 되어서 먼젓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이 세계시인대회는 시를 통한 세계의 평화와 우의라는 아름다운 모토 아래 196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아마도 유존, 중국의 종정문, 인도의 크리슈나 스리니바스, 미국의 루 루 투어(Lou Lu Tour) 4명의 발기로 출발한 것이 9회에 와서 완전히 세 갈래로 분열해버린 것이다. 다시 한번 언급하거니와 중화민국의 종정문 시인이 이끌어가는 샌프란시스코 본부의 세계시인 대회와 룩셈부르크 본부의 미모 모리나가 이끌어가는 세계시인대회와, 아마도 유존의 아들이 이 대회는 자기 아버지 것이라고 이끌어가는 벤 자민 유존의 세계시인대회가 제각기 9회다, 10회이다. 이렇게 각각 세계대회를 열어가는 현재 상황이다.
아무튼 이 세계시인대회로 해서 실로 많은 한국 시인들이 해외여행을 했다. 그리고 그런대로 많이 해외에 자기들의 시를 뿌렸다. 그리고 그런대로 많이 세계 시인들하고 친교를 맺어왔다. 그리고 그런대로 많이 세상 구경을 하고, 견문을 넓히고, 촌냄새를 닦아냈다. 그리고 그런대로 많이 자기들의 작품세계를 알고, 그 수준을 알고, 자신감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대로 국제적인 시인 냄새도 피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대로 해외에 초대도 되고, 작품 청탁도 받게 되고, 세계와 그 시로서의 같은 호흡을 하게 되었다.
영어는 영어대로, 불어는 불어대로, 서반아어는 서반아어대로 높은 장벽이 우리들 시인들 앞에 가로놓여 있지만, 있었지만, 그건 또 그런대로 인간으로 통하는 점들이 있었다.
시를 산다는 게 얼마나 말쑥한 행복인가. 이 세상 하고많은 인생에서 시의 인생을 산다는 게 얼마나 넓고 깊은 위안인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이 홀가분한 풍요로움, 시인은 실로 그것을 사는 고마운 이웃들이 아닌가.
수많은 시인대회에 참석하면서, 시를 여행하면서, 나는 늘 그걸 느끼곤 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인생의 동반자들·이웃들, 그러하기 때문에 서로 벽이 없는 존재들, 그저 만나면 몇십 년 몇백 년의 구면처럼 느껴지기만 하는 따사로움, 그 사랑, 그 우정, 그걸 느끼곤 했다. 언어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 언어처럼 느껴지는 이 감정의 왕래, 그것이 시인들이 아니었던가.
시는 산다는 거다. 살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거다. 따지는 것이 아니고, 그저 진실을 살아간다는 거다. 장식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있는 대로 정직하게 살아간다는 거다. 사교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타고난 자연을 살아간다는 거다. 거래를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존재, 그것을 순결히 살아간다는 거다.
그러하기 때문에 이 지구는 시인들에 있어서 한마당이며, 세계는 한 가족인 것이다. 그곳엔 종교의 색깔도 없고, 언어의 색깔도 없고, 인체 피부의 색깔도 없고, 사상의 색깔도 없고, 문화 문명의 색깔도 없고, 다만 토탈적인 같은 색깔의 삶이 있을 뿐이다. 같은 색깔의 생존이 있을 뿐이다. 그같은 동색의 생존의 눈물과 기쁨이 있을 뿐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시인대회는 언어가 불편하더라도 시인들끼리 즐겁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서로 시를 교환하면서.
이런 대회에 갈 때마다 수고하는 사람이 성춘복 시인이었다. 그 많은 여권수속부터 출국수속·입국수속·길안내·호텔수속까지 모든 일을 맡아서 해주는 그 고마움, 그것은 이 대회에 참가해본 시인들이면 누구나가 다 느끼는 것이었다. 그의 민첩성·정확성·정직성·친절성·기억성· 치밀성 그리고 그 근면성, 그것이 이 많은 여행을 손쉽게 해주곤 하는 것이었다. 간혹 그를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부터는 그의 이러한 친절성에 모두 고마움을 느끼곤 하는 것이었다.
그 언젠가 네덜란드 로테르담 국제시인제에 참가했을 때 다음과 같은 시를 쓴 일이 있다.
제목은 「성춘복」, 이렇게 해놓고
고성능 새마을 급행열차 같은 사나이.
이렇게 한 줄의 시를.
실로 그는 척 하면 척, 알아듣는 사나이다. 제4차 세계시인대회 사무실에서 나온 그의 별명은 성척이었다. 그만큼 그는 실로 고성능 기계장치 같은 성격의 사나이, 나는 그만큼 일을 척, 척, 잘 해내는 사람을 본 일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