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16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3,415 views

1970년대에 접어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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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구·이옥·강문봉·모윤숙·조경희·전숙희·한무숙·홍윤숙·김광주·주요섭·송지영·이무영·
정비석·김용호·문덕수·이영근·전봉건·김요섭·성춘복·김혜숙·김성진·홍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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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김요섭씨를 만났다. 김요섭씨도 한국문인협회이니 한국시인협회이니 한국현대시인협회이니 그리 모가 없는 사람이요, 서로 통하는 사람이요, 무난한 사람이란 생각이 되어서, 먼저 전봉건 시인 이야길 하고 “그러니 김형이 하나 맡아주시오, 모든 일은 내가 해나갈 터이니.” 했다. 한참 동안 그 큰 눈을 굴리더니 “그럼 해볼까.” 했다.
그렇게 되자 김요섭씨는 사무국 차장이라 할까, 같이 일하는 사람을 요구했다. “김형이 먼저 추천해보시오.” 했더니 그 자리에서 “성춘복(成春福) 시인이 어떻습니까?” 하길래 대뜸 “그렇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나서 성춘복 시인을 김요섭씨와 같이 가서 만났다. “성시인, 이번에 이렇게 이렇게 되어서 세계시인대회를 서울에서 치르게 되었는데 사무국 차장으로 일을 좀 맡아주시오.” 이렇게 간청을 했다. 이 사무국 차장 일은 실무적인 일이기 때문에 응분의 보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대뜸 “그럽시다.” 하는 말에 “고맙습니다.” 이렇게 나는 나의 말을 이어가면서 시원시원한 그의 말에 대단한 호감을 느꼈었다.
사실 나는 그때만 해도 성춘복이라는 시인하고도 잘 모르는 사이였다. 나는 그렇게 우리 문단하고 떨어진 자리에서 혼자 스스로의 운명을 작품으로 풀어가고 있었다. 문단조직에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지만, 생리적으로, 그렇다고 적을 가지고 있었던 거도 아니었지만 항상 나서는 사람들이 웬일인지 싫었었다. 그 이유 한 가지로.
김요섭 시인과 성춘복 시인이 결정지어져서 좀 마음이 풀려갔다. 그런데 성춘복 시인이 자기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월급을 받고 일을 할 사람, 책임을 지고 일을 할 사람이. 추천하라 했더니 “김혜숙(金惠淑) 시인이 어때요?” 했다. 그러자 김요섭 시인에게 물었다. “괜찮소?” 하고, “좋습니다.” 했다. 나는 이러한 순서, 이러한 말, 이러한 청으로, 사무국을 조직해갔다.
그리고 해당부서인 문공부를 찾아갔다. 그때 장관이 고맙게도 서울고등학교 제2회 출신, 농구선수, 김성진(金聖鎭) 장관이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장관실 소파에 앉자마자 그 말, 볼티모어대회 때의 이야길 했다. 하자마자 “선생님이 그런 사무는 모르실 거고 해서 볼티모어에서의 보고를 듣고, 국제문화협회 홍성철(洪性徹) 회장에게 말해두었으니, 염려 마십시오.” 했다. 그 말을 듣자, 순간 좋은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보람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남산 중턱 옛 KBS 자리 앞, 건너편에 있었던 한국국제문화협회로 갔다. 김요섭 시인·성춘복 시인·김혜숙 시인, 이렇게 함께.
홍성철 회장이 기분 좋게 대해주었다. 상당히 멋쟁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기획실장이 모든 것을 척척 해주었다. 방도, 사무진행도, 그리고 그것에 해당하는 부서에 인원수까지도 배당해주었다. 이렇게 잘 진행이 될 줄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모든 진행이 잘 짜여져갔다. 사무실이 국제문화협회 아래층에 넓게 마련되어서 일을 해나가기에 매우 쾌적했다. 대회에 필요한 예산도 김성진 장관이 홍성철 회장하고 잘 알아서 도와주니까 그리 근심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다만 어떻게 하면, 이 서울대회를 멋있게 치르느냐? 하는 문제만 남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능력과 건강에 딸린 문제이니까, 온 책임은 나에게 있는 거, 은근히 근심이 들기 시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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