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14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3,496 views

1970년대에 접어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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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구·이옥·강문봉·모윤숙·조경희·전숙희·한무숙·홍윤숙·김광주·주요섭·송지영·이무영·
정비석·김용호·문덕수·이영근·전봉건·김요섭·성춘복·김혜숙·김성진·홍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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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석씨 말에 참으로 미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체로 왔으니까. 그러나 이무영(소설가)씨의 말에 화가 났다. 식당에서 만나자 “조형, 어젯밤 얘기 들었는데, 예의지국에 와서 그게 뭐요, 아무리 술을 마신다 해도, 시인들에게 업혀 들어왔다니.” 자못 훈계하듯이 하는 말투에 나는 그 위선적인 태도에 작가적인 격분을 느꼈었다. 그 말이 떨어지자 “그래, 당신은 뭐요, 당신은 그렇게 업혀다닐만한 정직성이라도 있소. 성의껏 술을 마시고, 성의껏 대접을 받고, 우정에 견디지 못해 마신 술에 쓰러졌기로서니, 그것이 무슨 결례가 된단 말이오.” 술에 아직 잠겨 있던 기세로 그렇게 평소에 그 위선을 견디지 못해 확, 토해 버렸다. 그 이후 나는 그와는 결별해버렸던 거다.
나는 이 술의 탓으로 백년지기처럼 대만의 시인들하고, 어느 시인이나 간에 친숙해 버렸다. 언어가 문제가 아니었다. 정직한 그 정들이 서로 정직하게, 그리고 뜨겁게 엉겨버렸던 거다.
이 여행 이후에도 여러 번 대만을 갔었지만 갈 때마다 한국의 주호(酒豪)로 통해버려서 융숭한 술대접을 받곤 했다. 나는 술보다도 그렇게 그들하고 단숨에 친숙해버린 것을 참으로 고맙게 생각을 하면서 지내왔던 거다. 술의 은덕의 하나라 할까.
종정문 시인은 남경(南京)의 중앙대학을 나오고, 일본 교토(京都)대학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전공하고 있었던 일제 말기,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고국으로 돌아가서 장개석 국민당 군대에 장교로 입대, 항일전쟁에 가담, 장군까지 올라간 지식인 장군이었다.
대만으로 장개석 정부가 내려옴에 정부와 같이 내려와, 국민대표로 있으면서 각 신문사 주필을 역임, 신문연합회 회장직까지 하면서 언론계의 거봉으로 있는 중국의 대표적인 국제시인이다. 그리고 1985년 초에 창립된 예술문화국제학술원(World Academy of Arts and Cut ture)의 의장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 예술문화국제학술원은 세계시인대회의 역대 대회장이 그 이사로 있다. 그러니까 제8회 희랍대회부터는 세계시인대회를 이 예술문화국제학술원이 주최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제4차 세계시인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했기 때문에 그 이사 멤버로 되어 있다.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먼저 이야길 하면 현재 세계시인대회는 제 9회서부터 세 조각이 나버렸다. 룩셈부르크에 거주하며 󰡔뉴 유럽 (New-Europe)󰡕이라는 시지를 내고 있는 미모 모리나(Mimmo Mo rina)라는 이탈리아 시인이 원래 제7회 세계시인대회(모로코, 마라케 시) 때와 제8회 세계시인대회(코르후, 희랍) 때의 두 차례에 걸쳐서 세네갈의 전 대통령이었던 레오뽈 세다르 셍고르(Léopold Sédar Senghor, 1906~ )를 대회장으로 업고 그 사무국장을 했었는데, 우리들 종전의 이사진영들이 거세게 반대하는 바람에 제9차 세계시인대 (플로렌스, 이탈리아) 때부터 아예 독립해 버려서, 우리말 번역으론 같은 세계시인대회이지만 영어론 ‘World Organization for Poets’라고 명칭을 고쳐버렸다. 그리고 역시 회장에 셍고르를 내세우고, 자기는 그 사무국장으로 있다. 그러니까 이쪽의 세계시인대회는 주로 구라파 시인들이 중심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제9회 세계시인대회는 룩셈부르크 본부의 대회는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서,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예술문화국제학술원에서 연 제9차 세계시인대회는 인도 마드래스에서 열렸었다(1987.12.).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세계시인대회가 생겼다. 제8회 때부터. 필리핀의 아마도 유존의 아들 벤자민 유존(Benjamin Yuzon)이 자기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국제계관시인연합회(미국) 회원들을 대동해서 미국 뉴욕에서 제8차 세계시인대회를 열었던 거다. 벤자민 유존은 미국에 살며 토건업을 한다고 들었다. 우리나라 시인들은 문덕수 시인을 단장으로 대거 이 대회에 참석한 거로 알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제9차 세계시인대회를 대만 타이베이에서, 제10차 세계시인대회를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열었다. 물론 한국대표들이 역시 문덕수 시인을 단장으로 참석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1969년 마닐라에서 시작한 세계시인대회는 이렇게 제9차 대회서부터 세 갈래로 나누어지게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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