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에 접어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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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구·이옥·강문봉·모윤숙·조경희·전숙희·한무숙·홍윤숙·김광주·주요섭·송지영·이무영·
정비석·김용호·문덕수·이영근·전봉건·김요섭·성춘복·김혜숙·김성진·홍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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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나는 조 여사를 만나면 늘 농담으로 “눈 좀 더 크게 뜨시오.”하곤 했다. 그렇게 허물없이 지내곤 했지만 수복 후 명동에서 같이 어울려서 술을 마실 땐 가끔 그 작은 조 여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곤 했다. 너나 나나 할 거 없이 슬펐던 시절, 버림받던 시절, 권세나 있는 사람만이 판치던 시절, 벼락부자들이 거드럭거리던 시절, 돈과 권세 하잘 거 없던 말단 관리들까지도 으스댔던 시절, 돈거래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던 시절, 인간의 양심으로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던 시절, 명동 우리들의 술좌석엔 이러한 뜨거운 눈물들이 서로를 뜨겁게 감싸곤 했다. 사는 것이 슬퍼서, 억울해서, 아니꼬와서, 보기 싫어서, 비굴해서, 실로 굴욕적인 조국을 살았던 것이다. 다음과 같은 시귀절처럼.
일체의 수속이 싫어
그럴 때마다 가슴을 뚫고 드는
우울을 견디지 못해
눈 내리는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나는 먼저 아버지가 된 일을
후회해 본다.
필요 이상의 예절을 지켜야 할
아무런 죄도 나에겐 없는데
살아간다는 것이 지극히 우울해진다.
(「주점」, 일부)
명동의 예술가들은 다 이러한 버림받은 굴욕적인 삶을 항거로, 울분으로, 억울한 운명 같은 눈물로 그 역사의 피해자적인 존재를 살았던 거다. 한참 술에 취하면 흘러간 노래들이 이곳저곳에서 쏟아져나오면서 스스로의 눈물에 젖게 하곤 했다. 두만강, 황성 옛터, 목포의 눈물, 나그네의 설움…… 또 무엇이었던가, 슬픈 노래들이 줄지어 나오면서 눈물들이 글썽글썽들 했다. 조 여사의 그 작은 눈에서도,
그 슬펐던 시대를 같이 살던 조 여사는 장관이 되었고, 그 슬펐던 조국도 올림픽을 거뜬히 치러낼 정도로 성장 번영했으니, 실로 격세지 감이 든다.
조 여사하곤 그 무렵 거의 매일 밤 김광주씨 일행과 같이 술좌석을 같이 했지만, 술도 셌다. 그만한 술실력이면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주호급이라 할까, 우린 그렇게 호탕하게 술들을 마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