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10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3,439 views

1970년대에 접어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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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구·이옥·강문봉·모윤숙·조경희·전숙희·한무숙·홍윤숙·김광주·주요섭·송지영·이무영·
정비석·김용호·문덕수·이영근·전봉건·김요섭·성춘복·김혜숙·김성진·홍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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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9월에 도쿄에서 열렸던 제27차 펜대회(대회장 가와바다 야스나리)를 위시해서, 그해 12월 방화문화사절단(訪華文化使節團)으로 중화민국 대만을 여행했을 때에도, 1959년 7월 서독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렸던 펜대회때에도, 1966년 6월 미국 뉴욕에서 열렸던 펜대회때에도, 1969년 프랑스 망통 펜대회때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러번 여행을 같이 했지만 실로 한 가족 같은 가벼운 생각으로 즐거운 여행을 했었다. 이것도 먼 저승에서의 무슨 인연이라 할까.
프랑크푸르트 펜대회땐 실로 우리들로선 처음 해보는 구라파 여행이 었다. 조경희 여사와 그 말쑥한 프랑크푸르트 거리를 걷고 있었을 때, 우리 동양인들이 그들 서양인들에 비하여 참으로 초라하게 느껴졌었다. 지금이야 그러한 생각이 안 들지만 그땐 참으로 동양의 촌사람들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위축되었던 거다. 거기에다가 이유없는 동양적 열등감 같은 것도 깃들어 있었을 거다. 그때 무심코 나온 말이 있었다. 길을 걸으면서.
“조 여사, 눈을 좀 크게 뜨시오. 한국인들의 눈은 다 조 여사같이 작은 줄로 알리다.”
농담 삼아 나온 말이었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더 크게 뜨면 뭐해, 이 세상 뭐 더 볼 게 있니, 더 볼 것이 있느냐 말이야.”
조 여사의 말이었다. 명대답이었다. 명응수였다. 참으로 그럴듯한 대답이 아니었던가. 눈을 더 크게 떠봤자 그게 그거 아닌가. 이 세상.
이 세상 더 볼 거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 세상 어딜 가나 사람이 사는 곳 그게 그거,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를 것이 뭐 있는가. 희비애락, 생로병사, 만사 그것이 인생이 아니었던가. 그렇다고, 금세 그 답변이 그렇게 명쾌하게 떨어질 수가 있었는가. 그것은 조 여사니까, 그렇게 달관을 넘어서 더 큰 달관으로 뱉을 수가 있었던 거다.
조 여사야말로 이 세상, 온갖 것들을 다 경험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일제시대는 일제시대대로, 해방 후는 해방 후대로, 모든 것이 좌우로 분열된 사회에선 그 협회이니 동맹이니 하는 사이에서 그 혼란대로, 감옥이니 사형이니 석방이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무질서한 사회, 그 부조리 속에서 얼만큼 고통을 겪으며 살아 빠져나왔던가. 그리고 서울 수복 후엔 그 폐허화된 조국의 한가운데서 얼만큼 쓰라린 삶을 이어왔던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문필과 언론계에 몸담고 살아온 그 격랑의 생애가 ‘무얼 더 볼 게 있어서 눈을 더 크게 뜨느냐’라는 말을 토해낸 것이 분명하다. 실로 무게있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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