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에 접어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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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구·이옥·강문봉·모윤숙·조경희·전숙희·한무숙·홍윤숙·김광주·주요섭·송지영·이무영·
정비석·김용호·문덕수·이영근·전봉건·김요섭·성춘복·김혜숙·김성진·홍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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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
너는 남으로 천 리
나는 동으로 사십 리
산을 넘는
저수지 마을
식지 않는 시간, 삭은 산천을 돈다
등은 덴막의 여인처럼
푸른 눈 긴 다리
안개 속에 초초히
떨어져 서 있고
허허 들판
작별을 하면
말도 무용해진다
어느새 이곳
자, 그럼 넌 남으로 천리
난 동으로 사십 리.
이런 시 「오산烏山 인터체인지」를 쓴 일이 있다.
이 작품은 나의 제18시집 오산 인터체인지(1971.2.20. 문원사)에 들어 있는 작품이지만, 나는 1969년 9월 불란서 지중해 해변에 있는 망통(Menton)에서 열렸던 제36차 국제 PEN대회에 참석을 했었다. 이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떠난 여행, 나와 이헌구(李軒求) 선생 하곤 스칸디나비아 여러 나라를 구경하면서 서서히 지중해 해변도시 망통을 향해서 내려갔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스웨덴의 스톡홀름으로,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그리고 파리로, 쉬엄쉬엄 구경을 하면서 서서히 내려갔었다.
파리에선 파리 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는 이옥(李玉) 교수를 만났다. 이옥 교수의 아버님 이인(李仁) 선생과 이헌구 선생은 절친한 관계로 미리 연락을 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이헌구 선생과 같은 함경도 출신의 강문봉(姜文奉) 대사의 영접을 받은 일도 있었다. 강문봉 대사는 한국전쟁을 통해서 혁혁한 무공을 세운 유명한 장군, 군복을 벗고선 얼마 안 있다가 이곳 스웨덴의 대사로 나와 있었다.
이옥 교수는 키도 작거니와 대단히 깐깐한 성격이며 까다로운 사람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이 교수는 가스가 나는 음료들을 마시지 않았다. 양복 위에 불란서 정부에서 주는 문화훈장의 표식을 달고 있었다. 이 교수의 덕분으로 파리 대학도 구경했지만 망통 펜대회에도 참석을 해 서 많은 편리를 보았었다.
이 망통대회는 다음해인 1970년 서울에서 열리게 되어 있는 펜대회를 확인하는 중요한 대회였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한국의 펜이 국제적으로 몰리던 것은 투옥작가 문제였다. 이것이 항상 문제가 되어 서울대회를 반대하는 외국 펜센터들이 많아서 우리 한국 펜은 항상 고 생을 하고 꿀리곤 했다. 1987년 스위스 루가노 펜대회때도 그랬지만, 망통대회에 있어서 결국 모윤숙선생의 외교로 다음 해 서울대회가 결정되었지만 실로 약소 민족의 비애 같은 걸 느끼곤 했다.
이 대회때도 조경희·전숙희씨가 동석이었다. 한무숙·홍윤숙 그리고 누구였던가 한 열 명쯤 참석을 했지만, 조경희·전숙희씨 하곤 나는 많은 펜대회에 같이 참석했던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