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화촌 그리고 무교동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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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주·이봉구·유호·박연희·이해창·유창돈·백철·최인욱·김원국·김광섭·김진수·황순원·박노춘·
남광우·박창해·김민수·이기문·김동욱·양주동·박영준·이가원·김석득·문효근·전규태·백낙준·
박두진·박목월·김대규·신동파·정현종·정현기·정건영·정영자·강은교·양재연·이을환·이동림·
김기동·전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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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도 좀 언급했지만 ‘심원’은 대학교수들의 연락처같이 되어 있는 술집이었다. 주로 유창돈 교수를 중심해서 거의 저녁마다 이 사람, 저 사람, 서로 어울리며 모여들었다. 경희대학교나 연세대학교의 국어국문학과 회의는 이곳에서 하곤 했다. 박사논문 심사도, 석사논문 심사도 이곳이 그 단골 심사장이었다. 실로 대학의 황금시절 같은 때였다. 양재연(梁在淵) 교수, 당시 중앙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이었지만 매일밤의 단골손님이었다. 양재연 교수는 1920년 충북 괴산 출신이며, 청주고등학교와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거쳐 해방 후 서울대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국문학을 강의했다. 여러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최종에 중앙대학교 문리대 학장으로 1973년 세상을 떴다. 세상뜬 소식도 이곳 ‘심원’에서 알았다. 53년간의 이 이승의 생애, 양 교수는 고요한 선비였다. 남의 술을 공짜로 마시는 일이 없었다. 술대접을 꼭 기억하고 있다가 꼭 그 장소에서 갚은 말끔한 성격이었다. 사근사근 웃으며 남에게 먼지만큼도 해로운 감정을 주지 않는 섬세한 인품이었다.
김동욱(연대)·박창해(연대)·이을환(숙대)·이동림(동대)·김기동(동대)·김민수(고대)·남광우(중대)·박노춘(경희대)·김진수(경희대)·전광용(서울대), 이러한 국어국문학과 교수들 얼굴이 지금 쉽게 머리에 떠오른다. 거의 매일같이 이 집에서 만났으니까. 그러나 단국대학 교수들, 건국대학 교수들, 그리고 경북대학·부산대학의 국문학과 교수들도 많이 이 집을 이용했다.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면서도 수많은 논문·논문집·저서가 쏟아져 나왔으니까,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멤버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국어국문학회’의 창립자들이며, 계승자들이며, 그 핵심 멤버들이었다. 서로 그렇게 술들을 권하면서, 술을 마시면서도,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저서들을 많이 냈다. 오늘날의 대학교과서들이, 아니면 참고서적들이 다 이렇게들 술을 마시며 연구한 그 저서들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24시간, 하루의 온 시간을 그들은 완전하게 사용들 하고 있던 거다. 시간 낭비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약속시간에 꼭 나타나는 사람들, 그것이 술마시는 약속이라도 그들은 꼭 그 약속시간을 지키곤 했다. 참으로 단단한 인생그룹이었다. 나는 뜻하지 않게 그들에 끼어 많은 국어국문학에 관한 지식. 상식·정보·분위기 등등을 얻게 되었다. 얼마나 고마운 인생의 울타리 들이었던가.
간혹 술이 과하면 술주정을 할 때도 있지만 이들 그룹은 그러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용했다. 그러나 술이 취해서 고함처럼 질러대는 남광우 교수의 목소리나 그 노래에 질색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이을환 교수의 끈질긴 술좌석의 매너는 피곤할 때가 많았다. 그는 주전자에 술 한방울도 남지 않아야 일어서고, 안주 한 점이라도 남아 있으면 한잔 더하며 술을 청하는 버릇이 있었다. 악의가 없는 이 술버릇, 같이 마시는 사람은 지루하고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지만, 그 인정과 알뜰함에 번번이 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렇게 끝까지 마시는지.
세월이 많이 흘렀다. 흘러가면서 많은 그리운 벗들을 데리고 갔다. 빈자리에 남은 것은 그들의 저서, 그들의 노력, 그들의 땀, 그들이 혼신을 다해서 살던 그 보이지 않는 흔적들이다. 그들의 무덤은 인명사전 그 속에 있다. 묵묵히.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