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화촌 그리고 무교동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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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주·이봉구·유호·박연희·이해창·유창돈·백철·최인욱·김원국·김광섭·김진수·황순원·박노춘·남광우·
박창해·김민수·이기문·김동욱·양주동·박영준·이가원·김석득·문효근·전규태·백낙준·
박두진·박목월·김대규·신동파·정현종·정현기·정건영·정영자·강은교·양재연·이을환·이동림·
김기동·전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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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이미 유창돈 교수가 먼저 가 있었고, 국어국문학과 과장을 하고 있었다. 국어국문학과 진영은 다음과 같았다. 김광섭(시인, 시론)·김진수(金鎭壽: 희곡작가, 희곡론)·황순원(소설가, 소설론)·박노춘(朴魯春: 국문학)·유창돈(국어학, 중세국어), 그리고 강사로 남광우(南廣祐: 국어학, 중앙대) 박창해(朴昌海: 국어학, 서울대)·김민수(金敏洙: 국어학, 고려대)·이기문(李基文: 국어학, 서울대)·김동욱(金東旭: 국문학, 연세대)·양주동(국문학, 동국대),
이렇게 보다시피 유창돈 교수의 학문과 그 학자 친구들은 그 무렵 국어학 분야에 있어서 한국의 주봉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나는 자연 문인들보다는 이 그룹과 술을 마시는 기회가 늘어갔다. 그리하여 유창돈 교수의 학자그룹이 나의 문인 그룹에게, 나의 문인 그룹이 유창돈 교수의 학자 그룹에게 술좌석을 통해서 자주 섞이며 어울려 가게 되었다. 그 때문에 학자·교수들과 문인·기자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알게 되어 소위 한국의 지식인들이 밤마다 어울리게 되었다.
4·19가 일어나고, 5·16이 일어나고, 박정희 정권이 점점 자리를 잡고 굳어져 가면서 한일회담이 시작되었다. 정부는 젊은 외무부장관을 기용해서 국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한일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강한 정책을 써갔다. 매일같이 학생데모가 일어났다. 각 대학이 벌집 쑤셔 놓은 것같이 들고일어났다. 6.3데모, 바로 그것이었다. 학생들 교수들·문인들 사회인들, 실로 수많은 군중들의 데모가 극렬히 일어났다. 한일회담 반대,
이것과 관련되었는지는 자세히는 몰랐지만 연세대학교에서 시인 박두진 교수가 쫓겨나게 되었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유창돈 교수가 과장이었고, 박영준(소설)·박창해(국어학)·이가원(李家源: 한문학)·김석득(金錫得: 국어학)·문효근(文孝根: 국문학)·전규태(全圭泰: 국문학), 이러한 사람들이 그 교수 진영이었다.
5·16 전까지만 해도 한 교수가 두 개 대학에 전임교수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5·16 이후엔 대학교수들에 대한 규제들이 많아져 갔다. 우선 자격을 따야 할 것, 그러니까 무자격자들은 문교부에 일정한 서류를 내서 심사를 받고, 그 자격을 따라는 것이다. 이때에 문인교수들은 대부분 문교부가 요구하는 서류를 갖추어서 교수자격증을 따냈다. 그리고 한 대학만 전임할 것. 이러한 조항이 있었기 때문에 유창돈 교수는 경희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 둘 다 전임으로 있다가 연세대학교를 택하여 (백낙준 총장의 부탁으로) 전임을 하고, 경희대학교는 계속 강사로 나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