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독 순수허무 제1104호 (『떠난세월 떠난사람』)👁️ 조회수: 4,057 views

행화촌 그리고 무교동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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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주·이봉구·유호·박연희·이해창·유창돈·백철·최인욱·김원국·김광섭·김진수·황순원·박노춘·
남광우·박창해·김민수·이기문·김동욱·양주동·박영준·이가원·김석득·문효근·전규태·백낙준·
박두진·박목월·김대규·신동파·정현종·정현기·정건영·정영자·강은교·양재연·이을환·이동림·
김기동·전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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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돈(劉昌淳)이라는 국어학 교수가 있었다. 1918년생이며, 1966년 사망으로 되어 있으니까 아깝게도 48세로 세상을 떠난 게 된다. 사망시엔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과장으로 있었으나, 1949년 2월에 내가 서울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겼을 때 처음으로 유 교수를 그 교무실에서 만났다. 그해 나는 서울고등학교에 물리교사로 부임을 했던 거다. 인천 제물포고등학교에서, 그때 유 교수는 국어과에 있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유 교수는 해방이 되자 이북 신의주여자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고 했다. 일제시대 도쿄에서 중앙(中央)대학에 재학을 했으며, 법학을 공부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순전히 그 어려운 우리 국어공부를 독학으로 마스터해서 항상 고3, 대학준비 학년을 담당했다. 국어과 주임으로,
내가 서울고등학교에서 국어작문 선생까지 한 것은 순전히 유 교수의 권유였으며, 추천이었었다. 애초 물리선생으로 나는 출발했었으나, 시집을 내는 것이 거듭되자 1955년 가을학기부터 중앙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시론 강의를 청탁받게 되었다. 학장은 문학평론가 백철(白鐵) 선생이었다. 백선생은 동경고등사범학교의 선배였다. 학장으로 취임하자 소설론 강의를 최인욱(崔仁旭) 소설가에게 맡기고, 시론을 나에게 맡겼던 거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지금 같으면 소설이나 시론의 경험자보다는 박사학위를 따지는 형편이니까. 실지보다는 형식, 그 학위가 문제되는 시대로 바뀌었으니까. 이러한 곳에도 현재 대학교육의 문제점이 있을 것이다.
대학에 나가게 되니까 나에겐 책을 읽을 시간이 필요했다. 때마침 수학과에선 대수선생이 필요했다. 그러자 수학과 주임선생이 수학과로 돌아서 대수를 맡으라는 것이다. 참으로 좋은 찬스라 생각하고 교장선생(金元圭 교장, 일본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 영문과 출신)에게 그 뜻을 전했다. “교장선생님, 대수선생을 했으면 합니다. 대수선생도 비어 있고 해서.” 하자 “아니 조군은 고등사범학교에서 물리를 전공한 게 아닌가?” 순간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백묵으로만 수업을 하니까.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거 같아서, 양심에 부담이 오곤 합니다.” 이렇게 얼결에 말을 잇자 “그럼, 그렇게 하지.” 시원하게 이 말이 떨어졌다. 실로 생각지도 않았던 거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쉽게 해결이 되었다. 교장은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친다는 말에 동감을 했었으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교장이라도 그랬으리라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대수선생을 했다. 몇년이 지났다. 그러자 이번엔 유창돈 교수가 술자리에서 “조형, 국어작문 선생 하면 어때?” 하는 바람에 귀가 솔깃했다. 어려서 일본말로 크고, 일본인 학교에만 다녔기 때문에 우리말 철자법도 엉망이고, 우리말도 유학생이 공부한 거같이 서툴고 해서 내가 우리말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데는 이같이 좋은 찬스가 없다고 생각해서 다음 날 유창돈 국어과 주임이 하라는 대로 말을 연습하면서 교장실로 들어갔다. 유창돈 국어과 주임이 하라는 말 “교장선생님, 저 국어작문 교육을 했으면 합니다. 요즘 학생들 문장력이 약해서 자기 의사도 제대로 표현 못 하는데요.” 여기까지 교장을 만나자마자 얼결에 쑥 토해버렸다. 그리고 다시 남은 말을 이어가려 할 때 먼저 교장이 “그래, 요즘 학생들 문장력이 형편이 없어. 조군이 하고 싶으면 하지.” 이렇게 이어지면서 이것도 순조롭게 해결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서울고등학교 시절, 말기에 국어작문 선생을 했다.
그 무렵엔 작문 교육이 전연 없을 때였다. 이렇게 과목에도 없는 것을 확, 확, 결정지어갔던 김원규 교장의 교육열, 실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을 교육하는 것이 산교육이 아니던가.
덕분에 작문 선생을 하면서 국어 공부도 많이 하고, 학생들의 정서·사상·생각·요구 같은 것도 글을 통해서 알고, 참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채우고 싶었던 10년을 이곳에서 채우고 오라고 약속이 되었던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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