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시절과 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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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방·임영방·김수영·박인환·김소운·김광주·송지영·최영해·권영숙·신상주·원응수·정하룡·
박창해·김동욱·이가원·양주동·오화섭·이군철·이헌구·이해창·이석곤·방용구·이태극·이진구·
김진섭·박노식·박노춘·남광우·김민수·양재연·이동림·김기동·이근삼·박은수·김붕구·전광용·
정한모·정한숙·박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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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영씨의 편지를 읽으면서도 이러한 감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실감나는 송선생의 옥중 목소리이기 때문에 가슴 깊이 새기며 읽었던 거다. 이 편지에 나오는 노 마담이라는 것은 ‘카리레오’ 술집의 노명신씨를 말하는 것이며, 학부인이라는 것은 언젠가 기록한 한 정식집 ‘향원’의 주인 권영숙씨를 말하는 것이다. 감옥에 가기 전에 송선생하고 자주 술마시러 다니던 곳, 갑갑한 감방에서 오죽이나 갑갑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몇 번이고 읽곤 했다.
이렇게 단골로 거의 매일같이 가까운 교수들과 어울려 이 비어홀을 이용한 덕분으로 크리스마스 부근이 되면 매년 주인인 김사장의 특별 초대를 받곤 했다. 한 푼도 에누리 없고, 빈틈 하나 없는 김 사장의 초대, 그건 각별한 것이었다. 김 사장은 술도 하지 않는 깔끔하고, 검소한 분이었다. 크리스마스 부근이 되면 나의 술좌석에 다가와서 “조선생, 이제 또 연말이 되었습니다. 조선생이 좋아하시는 분들을 모시고 오십시오. 한 잔 내겠습니다.” 그날 밤엔 평소에 자주 이곳에서 만나던 친구들과 그야말로 송년회를 열곤 했던 거다.
구라파 유학생들, 지금은 이름도 다 잊어버렸지만, 임명방 교수·임영방 교수를 중심해서 나를 가장 따라주던 신상주(申相柱: 파리 대학 농학박사, 경희대 의과대학 교수, 생화학 전공) 교수, 원응수(元應洙: 파리 대학 유학, 문학박사, 서울대 교수, 불문학 전공) 교수, 정하룡(鄭河龍: 파리 정치대학 정치학 국가박사, 당시 경희대 정경대 교수) 교수…… 갑자기 이름이 떠오르지 않지만 한 열 명 가까운 인사들이 한 해를 보내는 술을 깊이깊이 들곤 했다. 김사장의 초대로,
이 무렵, 나는 경희대에 전임으로 있으면서 친구들 따라 연세대 문과대학과 이화대 문리과대학에 출강도 했다. 그러했기 때문에 연세대학에 출강하는 날엔 그날 밤은 연세대학 교수들하고 술을 마시고, 이화대학에 출강하는 날엔 그날 밤은 이화대학 교수들하고 어울리게 되고, ‘낭만’은 이렇게 저녁마다 피곤을 풀고, 우정을 접해가는 장소로 되어갔다. 장안의 대학교수들이 매일매일 이곳에서 대학사회의 정보 교환을 하고, 학문의 질의 문답을 하고, 인사 해결까지도 되곤 했다.
연세대학에선 국어국문학과의 유창돈 교수를 비롯해서 박창해 교수, 김동욱 교수, 때론 이가원 교수, 양주동 교수, 영어영문학과의 오화섭 교수, 이군철 교수, 이화대학에선 이헌구 교수(당시 문리대 학장), 이해창 교수(신문학), 이석곤 교수, 때론 방용구 교수, 이태극 교수, 이진구 교수(불문학, 작고), 경희대학에선 김진섭 교수(희곡), 때론 박노식 교수(지리학, 당시 문리대 학장), 박노춘 교수(국문학), 남광우 교수(국어학, 중대가 전임), 김민수 교수(국어학, 고대가 전임), 양재연 교수(국어학, 중대가 전임), 이동림 교수(국어학, 동대가 전임), 김기동 교수(국문학, 동대가 전임), 이근삼 교수(희곡, 당시 동대 교수), 박은수 교수(불문학, 당시 외국어대학), 김붕구 교수(불문학, 서울대 교수), 그리고 문인으로선 전광용(서울대 교수), 정한모(서울대 교수), 정한숙(고대 교수), 박연희(당시 동아일보)…… 끝이 없는 명단이었고, 끝이 없이 잊어지는 명단이었다.
요즘은 서로 명함을 내고 통성명하게 되었지만 그 무렵엔 친구의 자리에서 한잔 같이 하면 바로 깊게 통성명되었던 거다. 그러하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도 위에 열거한 이름들이 지금도 이렇게 머리에 남아 있지 서로 전공이 다른 사람들을 어찌 다 이렇게 기억하겠는가. 명함을 가지고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