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崔暎海씨와 그 주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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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가기 전에가 나오고 1956년 12월 20일, 합본시집 여숙旅宿이 또 정음사에서 나왔다. 제1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 제2시집 하루만의 위안, 제3시집 패각의 침실, 제4시집 인간고도, 이 네 시집을 합해버린 거다. 길쭉한 문고 같은 책형이었다. 나에겐 상당히 도움이 되는 시집이었다. 제1시집도, 제2시집도, 한국전쟁으로 거의 행방불명이 되어서 그걸 읽은 독자들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책으로 묶으니까 우선 과거의 작품을 보관할 수 있다는 기쁨이 들었다.
책이 나오던 날, 정음사 사장실에 들렀었다. 역시 교정을 보고 있었다. 저녁이었다. “조형, 오늘 신석정씨의 시집도 나오고 해서 한 잔 할 터이니 먼저 ‘카리레오’에 가 있소. 아마 이 시간 신석정씨가 기다리고 있을거요” 했다. 그때 나온 신석정씨의 시집은 빙하氷河였다. 그리고 ‘카리레오’는 그 무렵 최영해씨가 단골로 출입하던 명동 한복판에 있던 바 카바레였다. 어여쁜 아가씨들이 많았다. 양주도 가짜가 아닌 진짜를 우리에겐 주었다. 주인이 노명신이었던가, 멋있는 주인 마담이었다.
나는 최영해씨가 하라는 대로 ‘카리레오’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어두운 한구석에 한 사나이가 혼자 앉아 있었다. 미남이었다. 첫눈에 신석정 시인이라는 걸 알았다. 이미 술병을 따놓고 혼자 마시고 있었다. 옆으로 다가갔다. 처음 만나는 거라, 나는 “신석정 선생이시지요, 저는…..” 하자 “알았어, 알았어.” 하면서 어서 앉아 한 잔 하라는 것이다. 최영해씨가 곧 올 거라는 말을 전하면서 한잔 받아 들었다. 조니 워커가 그 무렵 가장 애호되던 술이었다. 그날 신석정씨가 따놓은 것도 조니 워커였다. 몇 잔이 서로 오고 갔다. 얼큰해지기 시작했다. 아가씨들이 곁에 앉아들었다. 그렇게 무드가 잡힐 무렵 최영해씨가 들어왔다. 새로 나온 시집 빙하를 가지고.
신석정 시인은 그 자기 시집을 손에 들자 흥분을 했다. 퍽 기쁜 기색으로, 누구나 자기 책이 나올 땐 기쁜 것이다. 그렇게도 오랜 세월 문학활동을 하고 책을 많이 냈어도 역시 흥분하는 모양이었다. 별안간, 실로 돌연히 신석정씨의 입술이 나의 입술을 덮쳤다. 키스를 한 것이다. 얼결에 나는 어쩔 수 없었다. 이럴 수도 있는가. 이렇게 겁탈을 당하다니. 일종의 겁탈이 아닌가. 남자끼리, 술에 취하면 못하는 게 없다곤 하지만 처음 당하는 일이라, 나는 얼떨떨했다. 그것도 평소에 내가 만나보고 싶었던 대시인이 아니던가. 그 대시인이 이렇게 초면에 입을 맞추다니. 암, 시인이니까, 시인은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오히려 이렇게 대담한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시인만이지, 시인이니까 할 수 있지, 그렇게 해야만 대시인답지 하는 생각으로 내 마음은 풀어져 나가고 있었다.
하자, “이거 호모 아닌가.” 최영해씨도 껄껄 웃었다. 웃는다는 건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걸로 내겐 생각이 들었다.
그때만 해도 최영해씨는 나에겐 존경스러운 사람이었고, 어려운 사람이었고, 행동이나 말을 조심해야 하는 사람이었고, 끔찍이 내가 모셔야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참으로 배우는 점이 많은 인생의 대선배였으니까.
사실 나는 그때까지 호모라는 말을 몰랐다. 옆에 앉아 있던 아가씨들까지도 징그럽다고 눈살을 찡그렸던 그 말을.
그날도 녹신녹신할 정도로 술을 마셨다. 신석정씨도 어지간히 많이 하는 술꾼이었다. 큰 코에, 긴 얼굴에 늘씬한 몸매에, 아름다운 전라도 사투리에, 그 목청에, 나는 친근감을 대번에 가질 수가 있었다. 몇십 년을 같이 보낸 다정한 선배처럼.
그 후 신석정씨는 나에게 가끔 편질 보냈다. 그것도 먹글씨로, 신석정씨는 붓글씨를 잘 썼다. 달필이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다정했다. 내가 경희대학교에 있을 때 자기의 제자들,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제자들을 잘 봐달라고 정성 어린 편질 잘 보내곤 했다. 입학땐 입학을 시켜달라고, 가난한 제자에겐 장학금을 좀 달라고, 그 편지들이 하나같이 달필의 붓글씨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끌리곤 했다. 무리해서라도 그 청을 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받아들인 그의 제자들은 나의 제자가 되어 지금 문단의 큰 별이 되어 빛을 내고 있다.
그도 갔다. 그 호탕하던 선비, 아름다운 서정을 고운 말로 뿌려놓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