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崔暎海씨와 그 주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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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하운시초韓何雲詩抄」가 역시 정음사에서 나왔다. 1949년, 아주 얄팍한 시집이었으나, 나에겐 매우 감동이 컸었다. 레프라 환자의 시, 문둥병 환자의 시, 이병철이라는 시인의 발문이 붙어 있었다. 갑작스럽게 이 시집이 장안 인기로 떠올랐다. 시는 좋았지만 이 한하운이라는 시인은 가공의 인물이라는 거다. 실제에 없는 인물이라는 거다. 이병철 시인, 아니면 어느 좌익 시인이 쓴 거라는 거다. 이렇게 한국전쟁 전부터 문제 되던 것이 서울 수복 후 본격적으로 정치문제로까지 번지어 국회로 발행인 최영해 사장이 증인으로 출두하게까지 되었다. 이 무렵 나는 자주 회현동 정음사에 출입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오전이었다. 한참 교정을 보고 있던 사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조형, 잘 왔소, 지금 곧 한하운 시인이 오기로 되어 있으니 여기 좀 앉아 계시오.” 하며 담배를 또 이어댔다. 최영해씨는 줄담배였다. 입에서 담배를 떼어놓을 때가 없었다. 줄곧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체인 스모카, 우린 이렇게 부르기도 했다. 뚱뚱한 거구, 넓적한 얼굴, 굵은 안경테, 아무렇게나 입은 소박한 복장, 계속 물고 있는 궐련, 언제나 최영해씨는 이러했다. 실로 그는 가식이 없는 인간, 장식을 싫어하는 인간, 꾸미고, 가꾸고 하는 걸 싫어하는 인간, 자연 그대로의 정직한 거인이었다.
온다는 정각 11시. 노크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자 한 사나이가 절을 하면서 사무실 방 안으로 들어섰다. 첫인상이 「제3의 사나이」에 나타난 오손 웰스, 얼굴에 심하게 레프라 병이 지나간 깊은 흔적들이 있었다. “인사하시지요, 이분이 조병화씨입니다.” 최영해씨가 이렇게 나를 소개하자 “네, 저 한하운입니다. 선생님의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 그리고 최근에 내신 인간고도, 잘 읽었습니다.” 공손한 말씨였다. 나는 즉각 이 사람은 틀림없는 시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하운이라는 사람은 실지 있는 사람이며 직접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이라는 자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도 한하운이라는 사람은 실재인물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증인의 한 사람이 된 거다.
무슨 일로 중상모략을 받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한때 이렇게 정음사 최영해씨는 시기·질투 속에서, 그런 거, 저런 거, 아랑곳할 거 없이 단연 출판계의 왕좌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었다.
